Leica CL, again

내 첫 라이카는 D-Lux 7과 CL이었다.

그중에서도 CL은 당시 내겐 꿈 같은 카메라였고, 처음 구입했을 땐 아까워서 잘 들고 다니지도 못했다.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들어 블랙 바디만 두 번 구입을 했지만, 조작하기가 너무 어렵기도 했고 또 M3 필름바디에 살짝 미쳐버려서 아쉽게도 모두 떠나보냈다.

M과 같은 레인지파인더 카메라를 이것저것 구해 사용을 해보고 나니 이제야 뒤늦게 CL의 진가를 알게 됐다. 그래서 다시 들였다. 이제는 단종된 제품이라 신품 구입이 불가해 어쩔 수 없이 신동품 같은 중고를 구입했다.

출시한 지 한참 지난 디지털 카메라에 APS-C 센서를 장착하고 있어 기능적인 측면에서 보면 여러모로 허접하지만, 바르낙을 모티브로 한 수려한 디자인과 직관적인 컨셉은 2024년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이 카메라를 구입할 이유(핑계거리)를 제공한다.

상단에 위치한 두 개의 휠은 초보자에겐 쓰레기 같은 기능이지만, 카메라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겐 극한의 편리함을 제공한다. EVF에서 눈을 떼지 않고도 자유롭게 촬영 모드를 조정할 수 있는 게 CL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나의 경우엔 필름 바디에 물려있는 M 마운트와 L 마운트 렌즈를 놀리기 아까워 CL을 다시 찾게 된 것도 있다. M10-R을 가지고 있지만 신품으로 구입한 바디라서 그런지 차마 빈티지 렌즈를 마운트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또 M10-R을 막 굴릴 용기도 없다 보니 잔기스 걱정 없이 그냥 마음 편하게 들고 다닐 라이카 디지털 바디가 있었으면 했다.

반도카메라에서 M-T 어댑터를 구해다가 앰로커 40mm와 삼반 주마론을 각각 올려 마운트하고 보니, CL 라인을 그냥 단종시켜버린 라이카의 결정을 절로 비난하게 되는 비주얼이 완성됐다.

장비가 필요한 취미는 언제나 기추와 방출 사이에서 땅을 치고 후회하기를 반복하는 지랄병과 다름 없음을 또 한 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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