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경쟁 시대, 전쟁은 불가피한가?

『碧珍』 특집호 | 2024-07-04

신승휴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박사과정)

냉전기 국제정치학계의 관심이 미국과 소련의 경쟁에 집중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는 학생과 이를 업으로 삼는 학자의 주된 관심사는 단연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일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은 2010년대 초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대외정책 기조로 천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진핑 주석의 집권 아래 중국이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버리고 ‘유소작위(有所作爲)’를 외교 원칙으로 표명하게 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201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새롭게 출범한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포하고 경제와 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본격적으로 견제하면서 경쟁은 빠르게 심화되었다.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반중(反中)연대를 구축하여 전방위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나서면서 양국 간 긴장과 갈등의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미국의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가 안보, 경제, 기술, 이념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지속되는 가운데 강대국 정치는 경쟁 당사국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차원에서 모든 국가의 번영과 안보를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로 발전했다. 국제레짐과 상호의존의 순기능을 통해 두 강대국의 힘겨루기를 완화하려는 시도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갈등은 좀처럼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경쟁에서 파생되는 분야별 이슈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미국과 손잡은 어느 국가가 중국으로부터 경제 보복, 사이버 공격, 내정간섭 등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소식은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권력관계가 근본적인 차원에서 조정되지 않는 이상 갈등 수위를 낮추거나 분야별 이슈를 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양강 사이에서 곤란한 처지에 놓인 비강대국들의 딜레마도 각국의 자체적인 노력만으론 개선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미·중 경쟁의 끝을 전쟁으로 내다보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두 강대국이 몽유병자처럼 전쟁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날로 커져만 간다. 미·중 패권경쟁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이와 관련하여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미국이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을 통해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현존 국제질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미국이 경쟁에서 이기는 시나리오다. 이는 현재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하는 전략 목표이기도 하다. 미국이 동맹국 및 우방국과 규합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나선 행보는 중국의 부상을 기필코 차단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공격적 현실주의(offensive realism) 이론을 발전시킨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 시카고대학 교수의 논의에 따르면, 강대국은 안보 달성을 위해 끊임없이 패권국의 지위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므로 다른 강대국의 부상을 차단하는 데 높은 이해관계를 가진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대외 전략이 다른 대륙에 개입하여 잠재적 도전국의 출현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는 사실만을 두고 본다면 앞으로도 미국은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중국의 도전을 지속해서 차단하고자 할 것이다.

미·중 경쟁은 두 강대국 간 일대일 대치 상황보다는 진영 간 대립에 더 가까운 성격을 띤다. 최근 러시아, 이란, 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들이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세계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협력을 강화해가는 현상은 지배 세력과 대항 세력 간 대결을 그려낸다. 많은 국제정치학자가 미·중 패권경쟁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싸움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미·중 경쟁의 핵심은 중국에 대한 미국 주도의 집단적 대응이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는 ‘격자형(lattice-like) 안보 구조’를 구축하겠다며 동맹 간 연결성을 높여 대중국 견제와 압박의 그물망을 키워가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즉 미국은 다른 국가들이 세력배분구조의 급격한 변화를 막는 데 뜻을 모아 대중국 견제에 동참하길 원한다. 결국 경쟁의 승패는 미국의 힘과 의지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글로벌·지역 차원의 세력균형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작동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중국의 상대적 국력 증대와 미국의 패권 약화로 인한 ‘세력전이(power transition)’다. 쉽게 말해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글로벌 패권국으로 부상하게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경쟁의 구조가 중국 중심의 단극(unipolar) 체제로 전환되는 시나리오다. 물론 이러한 세력전이는 전쟁과 같은 무력 분쟁을 동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영국과 미국 사이에서 이루어진 패권의 평화적 이전을 떠올리며 미·중 간 세력전이 역시 평화롭게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망상에 가깝다. 세력전이 이론을 소개한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오르간스키(A.F.K. Organski) 미시간대학 교수는 세력전이의 조건으로 도전국이 기존의 세력배분구조에 불만족하며 패권국과 견줄만한 국력을 갖게 되는 상황을 제시하고, 세력전이가 이루어지는 시점은 패권국과 도전국 간 전쟁의 가능성이 가장 커지는 때임을 주장했다. 중국이 미국 중심의 국제체제와 질서에 불만족하는 도전국임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광활한 태평양과 넓은 지구는 두 개의 대국을 수용하기에 충분하다”는 시진핑 주석의 인식과 이를 바탕으로 추진되어온 일대일로(一带一路) 정책만 보더라도 현존 질서에 대한 중국의 만족도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중국은 정말로 미국을 추월해 새로운 글로벌 패권국이 될 수 있을까? 이는 중국의 잠재력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에 달려있다. 먼저, 중국의 굴기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비관론과 낙관론이 동시에 존재한다. 비관론자들은 국내적으로 산재한 다양한 정치·경제·사회적 문제들로 인해 중국이 그간의 성장세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거나, 도광양회 기조를 너무 일찍 벗어던진 바람에 앞으로 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외부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반대로 낙관론자들은 이미 중국이 냉전기 소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강한 국가로 떠올랐다는 점을 강조한다. 군사력은 미국이 여전히 앞서고 있지만 글로벌 경제 질서에서는 중국이 더 큰 힘을 행사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두 강대국 간 격차가 날로 줄어들고 있음을 경고한다.

한편 미국의 상대적 쇠퇴는 논쟁의 대상이기보다 자명한 사실에 더 가깝다. 물론 연성권력(soft power)이나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미국의 쇠퇴를 부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패권을 두고 벌이는 전략경쟁 상황에서 문화력이나 국가 이미지가 얼마나 효과적인 권력자원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미국에 대한 국제적 신뢰는 지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First)’로 인해 대폭 약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오늘날 미국이 격자형 안보 구조나 동맹 간 연결성 증대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이미 중국을 억누르는 데 상당한 부침을 겪고 있음을 방증한다. 세력전이는 중국의 힘이 미국의 그것을 넘어서고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 주도의 집단적 대응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할 때 발생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력균형이나 세력전이가 아닌 ‘세력공유(power sharing)’를 전제로 하는 세 번째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이 공통의 이익을 바탕으로 일련의 합의를 통해 권력을 공유함으로써 전쟁이라는 재앙을 피하는 것을 뜻한다. 미·중 간 세력공유는 국제체제를 두 개의 강대국으로 이루어진 양극(bipolar)으로 분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무분별한 경쟁과 긴장을 완화하고 궁극적으로 전쟁을 방지한다는 공통의 이익을 바탕으로 미·중을 포함한 소수의 강대국이 하나의 ‘협조체제(concert of powers)’를 구축하게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중국이 제안한 바 있는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도 넓은 의미에서 협조체제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권력관계는 미국이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사실상 포기하고 리더십의 일정 부분을 중국에 양보하며 권위주의 국가들과의 이념적 차이를 극복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가장 실현되기 어려운 시나리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미·중 경쟁의 갈등 고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위기 등 암울한 국제정치 현실과 전쟁의 위협에 마주한 상황에서는 ‘가장 그럴듯하지 않은’ 시나리오에도 어느 정도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미국외교협회 회장을 역임한 리처드 하스(Richard N. Haass) 박사와 찰스 쿱찬(Charles A. Kupchan) 조지타운대학 교수는 2021년 3월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새로운 협조체제(The New Concert of Powers)’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의 패권이 사라진 미래 국제체제의 청사진을 도발적으로 그려낸 바 있다. 이들은 국제체제가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다양한 이념을 아우르는 다극(multipolar) 체제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하면서, 그러한 전환의 시기에 동반되는 격동의 변화와 전쟁의 위협을 완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19세기 유럽협조체제(Concert of Europe)를 모티브로 한 새로운 강대국 협조체제 구축을 제시했다. 그 논의에서 강대국 협조체제는 정치적 포용성(political inclusivity)과 절차적 비공식성(procedural informality)이라는 두 가지 조건 위에 수립되는 권력관계로 소개된다. 먼저 정치적 포용성은 강대국 협조체제가 국내정치 제도나 이념을 떠나 지정학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든 국가의 참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구축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 인도, 일본, 러시아 등 주요 강대국 및 국가 연합체가 참여하되 이들 간 이념적 차이나 국내정치 제도의 차이를 문제 삼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상기한 국가들이 사실상 세계 GDP와 군비 지출의 약 70%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를 대변한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시각을 반영한다. 따라서 강대국 협조체제는 본질적으로 권력 중심적이며 특정의 이념, 가치, 정치체제 등에 기초한 원칙, 규범, 제도는 인정하지 않는다.

한편 절차적 비공식성은 법적 구속력을 동반한 강제적 절차나 합의를 사실상 배제하는 조건이다. 그간 유엔 안보리가 상임이사국 간 갈등 상황에서 잦은 비토(veto) 행사로 인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현실을 고려하여 그러한 문제점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강대국 협조체제는 참여국들이 합의를 목적으로 회유와 다툼을 벌일 수 있는 사적 무대이자 이해관계의 충돌과 이념적 차이를 극복해나갈 통로로 기능한다. 즉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나 다자협의체가 의사결정을 위한 조직체로 기능한다면 협조체제는 협의를 위한 조직체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둘은 구분된다. 협조체제를 통해 기존의 규범과 제도들을 심의하고 필요에 따라 새로운 규칙을 만들거나 공동 이니셔티브를 지원할 수 있으나 문제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활동은 유엔을 비롯한 기존의 제도에 맡겨진다. 다시 말해 국제기구나 다자협의체를 대체하기보다 그 순기능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가장 상위수준에서 협의와 결정을 제공하는 것이다.

19세기 유럽협조체제와 마찬가지로 강대국 협조체제는 영토적 현상유지와 국가주권에 특권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국가 중심적이다. 이러한 특권이 도전받게 되는 상황은 오직 군사개입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상황에서 국제적 합의가 뒷받침될 때다. 협조체제에 참여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위계나 안보와 관련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하지만, 핵심 이익(주권과 영토 등)이 당장 위협받지 않는 이상 직접적인 대화와 명확한 신호전달을 통해 일방적 행위에서 비롯되는 무력 분쟁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 강대국 협조체제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이들의 공통된 기대다. 대규모 전쟁을 막는 방법으로 미·중 간의 권력 공유와 ‘아시아 협조체제(Concert of Asia)’의 구축을 호소한 호주의 전략학자 휴 화이트(Hugh White) 호주국립대학 교수 역시 협조체제의 목적과 기능이 전쟁 방지에 있음을 강변한 바 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이 권력의 공유를 통해 아시아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고 복잡한 일이지만 공멸로 이어질 전쟁을 방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진지하게 고려될 가치가 있음을 주장했다. 핵무기를 보유한 강대국들이 전쟁으로 가게 될 위험이 관리되기 어려운 수준에 다다르게 된다면 화이트 교수의 주장처럼 협조체제는 합리적인 선택지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물론 권력 분점에 기초한 질서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크고 분명한 문제는 미·중 간 권력의 공유가 실현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강대국 협조체제의 기본 조건은 하락하는 패권국과 부상하는 도전국 간 권력의 공유다. 즉 미국이 좁게는 인도-태평양 지역 넓게는 글로벌 차원에서 중국과 패권을 공유해야만 하며, 중국 역시 미국의 양보를 존중하여 자신의 세력권이 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공동으로 리더십을 행사하는 데 동의해야만 한다. 이는 양국의 강경파와 온건파 그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구상이다. 특히 전략적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미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콘도미니엄(condominium)’을 현시점엔 상상하기 어렵다. 아울러 양강 사이에서 권력 분점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공동 통치를 위한 신사협정이 체결되기 위해서는 역내 국가들의 복잡한 이해관계 역시 조정되어야 한다. 즉 미·중은 남중국해와 양안 문제, 동중국해 분쟁, 한반도 분단 상황과 북핵 문제 등 역내 안보 문제를 두고 갈등하는 국가들이 국내정치적 이해관계나 이념적 대립을 넘어 권력 분점을 지지하도록 설득해 나가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소수의 강대국이 중심이 되어 구축될 협조체제는 비강대국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에서 미·중 간 세력공유에 대한 국제적 반대가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일부 학자들은 강대국 협조체제가 개별국가의 주권을 강하게 옹호한다는 점에서 비강대국의 승인을 어렵지 않게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 화이트 교수 역시 아시아 협조체제가 “가장 강력한 국가들끼리의 타협으로 형성되는 질서”를 의미하므로 많은 부분에서 중견국이나 약소국의 희생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 주장한 바 있다. 즉 강대국 정치의 위험성을 관리하고 전쟁을 방지한다는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비강대국의 세부적인 이익은 얼마든지 간과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비강대국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오늘날 많은 국가가 현상유지를 위해 미국의 반중 전선에 힘을 더하고 있음을 떠올려본다면 강대국 중심의 협조체제는 비강대국들로부터 환영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많은 국제정치학자가 미·중 경쟁이 전쟁으로 귀결될 것으로 본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 하버드대학 교수는 그의 유명한 저작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에서 역사적으로 신흥 세력이 지배 세력을 대체하려 했던 16번의 시도 중 12번이 전쟁으로 귀결되었음을 지적하면서,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의 법칙에 따라 미·중 패권경쟁도 전쟁으로 이어질 위험이 매우 큼을 경고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앞서 살펴본 세력균형과 세력전이의 시나리오는 높은 수준에서 전쟁 가능성을 내포한다. 반대로 세력공유의 시나리오는 양강이 투키디데스 함정을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로 보이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

물론 이 세 가지 시나리오가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경쟁을 ‘관리’함으로써 공존하는 대안적 시나리오도 그려볼 수 있다. 저명한 중국 전문가로 알려진 케빈 러드(Kevin Rudd) 前 호주 총리는 그의 저작 『피할 수 있는 전쟁(The Avoidable War)』에서 그 해법을 제시한 바 있는데, 하버드대학의 앨리슨 교수가 펴낸 『예정된 전쟁』의 답서 격으로 나온 그 책에서 러드 총리는 미국과 중국이 ‘관리된 전략적 경쟁(managed strategic competition)’을 유지하여 관계의 안정성과 공존의 가능성을 키움으로써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양국이 군사적 레드라인을 다루는 원칙과 절차를 합의로 설정하고, 비군사적 안보와 이데올로기의 영역을 명확히 이해하며, 지속적인 협력이 가능한 분야를 규정해나간다면 전쟁은 불가피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역시 쉽지 않은 길임은 분명하다. 러드 총리가 지적하듯 관리된 전략적 경쟁에 따라 상호 합의된 규칙은 신뢰만으론 준수되길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 세부 사항과 집행은 지속적인 ‘검증’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관리된 전략적 경쟁의 시나리오는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비관론이나 미·중 간 신뢰 형성을 기대하는 이상주의를 동시에 경계하며 평화로의 길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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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경쟁은 미국과 중국의 사정이 아닌 당장 우리의 현실이다. 국제정치학을 전공하는 이가 아니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향방을 주시할 필요가 있는 이슈다. 두 강대국의 권력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조정되는가에 따라 한국이 그리는 미래 청사진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에만 매몰되어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좁은 시각이나 강대국 정치와 전쟁의 위협을 먼 나라 먼 훗날의 일로 치부해버리는 편리함을 버려야 하는 이유다. 정책적 차원에서는 더 깊은 이해가 요구된다. 정권의 성향에 따라 미국과의 동맹에만 매달리거나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고집하는 식의 소극적 대처는 패권경쟁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든 국익을 지켜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갈등 국면의 변화에 따라 원치 않은 전쟁에 휘말리거나 전략적 가치를 잃어 방기되는 처지에 놓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미·중이 전쟁이 아닌 관리된 경쟁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하는 능동적 역할이야말로 중추적 중견국 한국이 지향해야 할 외교가 아닐까 생각한다. /

참고문헌

Allison, Graham. 2017. Destined for War: Can America and China Escape Thucydides’s Trap?. Melbourne and London: Scribe.

Bell, Coral. 2005. Living with giants: Finding Australia’s place in a more complex world. Strategy series. Australian Strategic Policy Institute (April 1).

Haass, Richard and Charles A. Kupchan. 2021. “The New Concert of Powers.” Foreign Affairs (March 23). https://www.foreignaffairs.com/articles/world/2021-03-23/new-concert-powers.

Rudd, Kevin. 2022. The Avoidable War: The Dangers of a Catastrophic Conflict between the US and Xi Jinping’s China. New York: PublicAffairs.

White, Hugh. 2012. The China Choice: Why We Should Share Powe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