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하면 흔히들 군사적 차원의 안전보장 개념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특히 한국처럼 분명한 적과 군사적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사회에서 안보는 주로 국가 간 무력분쟁, 다시 말해 전쟁의 맥락에서 이해되고 다뤄진다. 국제안보연구(International Security Studies) 역시 미국과 소련의 군사적 대립 속에서 태어난 학문으로 냉전이 종식되기 전까지 이 분야의 주된 연구 주제는 강대국 간 전쟁과 핵억지 등에 관한 것이었다. 냉전이 종식되자 일군의 학자들은 안보연구가 그 목적을 상실해 더 이상 맥을 이어가기 힘들 것이라 주장하였고 실제로 안보연구는 냉전 종식 직후 국제관계학과 전략학 사이에서 존재감을 잃어가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오늘날 안보는 그 개념과 학문적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광범위한 분야로 발전해가고 있다. 여전히 안보연구에서 국가의 생존과 국가 간 무력 행위의 문제는 중요한 연구 주제이지만 유일한 탐구 대상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인간안보론은 안보의 대상을 국가가 아닌 개인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개인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과 구속이야말로 진정한 안보 위협이라 주장한다. 코페하겐 학파의 경우에는 안보의 대상을 국가와 개인을 넘어 ‘생존을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확대하는 한편 안보의 개념을 군사, 경제, 환경, 정치, 사회의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를 벌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안보의 개념이 넓어지고 그 연구 주제가 다양해져간다는 것은 그 만큼 현실 세계에서 다양한 종류의 난제가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전쟁만이 인류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문제였다면 오늘날 세계는 기후변화, 환경오염, 난민, 경제적 불평등, 식량난, 종교적·민족적 갈등, 전염병 등 다양한 난제들에 직면해있다. 이러한 변화에 맞서 학계에서는 안보의 범주를 확대함으로써 전통안보의 발상과 개념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존재해왔는데, 이들 연구는 안보 대상과 위협의 다양화를 통해 과거에는 안보 위협으로 여겨지지 않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군사적·국가 중심적 안보문제와 구별되는 ‘비전통 안보(non-traditional security)’ 위협으로 격상시키는 데에 기여했다. 그 결과 국가, 국제기구, 지역 협의체 등 안보 분야의 주요 행위자들이 기후변화나 인구 이동, 전염병 등의 문제들을 안보 사안으로 인식함과 동시에 그 해결에 필요한 대응 방안을 모색해나갔다. 안보연구 역시 군사학, 전략학 혹은 평화연구의 성격을 넘어 더 포괄적인 학문 분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안보 개념과 발상의 확장은 다양한 형태의 위협들을 안보 영역으로 끌어들여 안보 사안으로 격상시키는 데에만 기여할 뿐 정작 문제의 이해와 해결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비전통 안보론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아감에 따라 비군사적 안보 위협에 대한 국가 및 국제기구의 관심이 커지고 문제 해결에 필요한 지원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지만 정작 위협의 원인과 진화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다보니 제대로 된 대처 방안을 도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편 비전통 안보의 개념화가 담론과 인식을 바탕으로 구성되다보니 비전통 안보위협으로 묘사되는 난제들 역시 실존적이고 임박한 위협이 아닌 담론을 통해 만들어진 과장된 위협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따라서 문제의 실제 심각성이 매우 높더라도 전쟁과 같은 전통안보위협보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부차적인 문제로 다뤄지는 경우 역시 존재한다.

비전통 안보론의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학계에서는 안보의 담론적 혹은 인식론적 구성에 대한 연구를 넘어 실제로 위협이 발생하고 양질적으로 진화해가는 과정을 탐구하려는 학문적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신흥안보(emerging security)’의 개념이다. 여기서 소개하는 신흥안보의 개념은 국제정치학자 김상배가 제시한 안보의 개념으로서 나토(NATO)가 새롭게 떠오르는 다양한 비군사적 위협들을 통칭하기 위해 사용한 ‘Emerging Security’ 개념과는 다르다. 참고로 나토의 Emerging Security 개념은 담론을 통한 안보문제의 구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코펜하겐 학파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Herd et al., 1998).

신흥안보의 위협: 창발의 과정

신흥안보의 개념화는 군사안보를 중심으로 한 전통안보의 발상과 비전통 안보의 소극적 개념화를 통해서는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유형의 위협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신흥안보라는 개념어에서 ‘신흥’은 복잡계 이론에서 말하는 ‘Emergence’를 번역한 것으로 어느 특정한 장소에서 발생한 작은 사건 하나가 주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요인에 작용해 복합되어 점차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됨으로써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자연과학에서는 이 ‘Emergence’의 개념어를 ‘창발’이라고 번역하는데, 창발이란 ‘복잡계에서 자기조직화의 과정을 통해 새롭고 일관된 구조나 패턴, 속성 등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김상배 2018). 다시 말해 창발은 미시적 단계에서는 존재감과 자체적 속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소규모의 존재나 단순한 사건이 주변에 존재하는 다른 존재 혹은 사건들과 상호작용 함으로써 상호 연계성을 증대시켜 거시적 단계에 이르러 그 속성으로서 일정한 규칙성과 질서를 가지게 되는 과정을 뜻한다. 따라서 ‘신흥’은 ‘창발’이 이야기하는 자기조직화의 과정을 달리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신흥안보는 미시적 차원의 단순한 소규모의 안전문제가 거시적 차원으로 옮겨가면서 대규모의 안보문제로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흥안보위협으로 구분되는 이슈는 주로 개별안전의 문제로 시작되어 양질적 변화 과정을 통해 안보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다시 말해 안전의 문제가 양적으로 늘어나 ‘집합안전(collective safety)’의 문제가 되고, 집합안전의 문제가 다른 안전문제나 안보위협들과 질적으로 연계되면서 일정한 수준을 넘어 심각한 안보문제로 거듭나는 것이다.

신흥안보의 창발 과정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미시적 차원의 안전의 문제가 거시적 차원의 안보 위협이 되기 위해 넘어야하는 ‘임계점(critical point)’, 즉 창발의 조건이다. 앞에서 이미 강조한 바와 같이 안보의 문제는 갑자기 생겨나는 위협이 아닌 복잡계 현상을 배경으로 발전해 어느 시점에 이르러 존재를 드러내는 위협이다. 자연재해처럼 예고 없이 갑자기 발생하는 문제 역시 미시적 단계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상호작용이 일정 수준에 이르러 재난으로 이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일정 수준이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김상배에 의하면, 일반안전의 문제가 안보문제가 되기 위해서는 그 창발의 과정에서 세 단계의 임계점을 넘어야하는데, 이는 양질전화 임계점, 이슈연계 임계점 그리고 지정학적 임계점이다 (그림 1 참고).

신흥안보의 창발 3단계
그림 1. 신흥안보의 창발 3단계 (김상배 2018)

먼저 양질전화 임계점은 말 그대로 미시적 차원의 소규모 안전의 문제가 양적으로 증가해 더 큰 위협으로 발전하는 과정 중에 넘게 되는 일정한 수준을 의미한다. 즉 양적 증대가 질적 변화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넘어야하는 임계점이다. 파급력이 적은 개별안전의 문제는 문자 그대로 일상 속 안전의 문제이지만 만약 그 발생 횟수가 급격히 증가한다면 피해의 규모는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게 된다. 발생 횟수가 늘어나는 것과 비례하게 위협의 파급력 역시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가정이 감기에 걸리는 일은 별 문제가 아니지만 그 감기 바이러스가 도시 전체 혹은 나라 전체로 퍼진다면 이는 국가의 생존, 더 넓게는 인류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명백한 안보문제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슈연계 임계점은 특정 이슈가 다른 이슈들에게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혹은 다른 이슈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상호 연계되면서 질적으로 변화하는 지점을 의미한다. 이슈연계라 함은 단순히 하나의 문제가 또 하나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여러 이슈들과 복합적으로 상호 연결됨으로써 거대한 이슈구조 혹은 네트워크에 편입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해당 신흥안보의 문제가 이슈구조 내에서 다른 여러 안보문제들과 연결되는 과정 중에 그 구조에 존재하는 ‘구조적 공백(structural hole)’을 메워 전체 네트워크를 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난민의 급격한 유입은 그 자체로도 사회경제적 문제를 낳을 수 있지만 더 나아가 사회적 분열 등의 문제와 테러 위협 사이에 존재하는 약하거나 끊어진 링크를 연결함으로써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위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신승휴 2016). 이 경우 난민 문제는 더 이상 단일의 문제가 아닌 다수의 안보문제로 이루어진 크고 복잡한 이슈구조의 일부가 되어 개별적인 관리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지정학적 임계점은 양질전화와 이슈연계 과정을 통해 창발로 이어진 혹은 창발의 조짐을 보이는 신흥안보 위협이 전통안보와 연계되어 국가 행위자 간의 지정학적 갈등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신흥안보의 이슈가 지정학적 임계점을 넘어 전통안보의 영역으로 들어올 경우 국가 간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전쟁과 같은 무력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점에서 신흥안보의 개념과 발상은 전통안보의 문제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한 이론적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안보문제가 다 신흥안보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이는 신흥안보의 문제가 창발의 메커니즘을 거침에 따라 가지게 되는 세 가지 특성 때문이다. 첫째, 신흥안보의 위협은 극단적 사건, 즉 ‘X-이벤트(extreme event)’를 통해 발생한다. X-이벤트란 과거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격변(catastrophe)’ 현상으로 사전 예측이 매우 어렵고 발생 가능성도 매우 낮지만 실제로 발생할 경우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다. 둘째, 신흥안보의 문제에서는 국가, 비국가 행위자, 인간 행위자 이외에 다양한 사물이나 기술들이 위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에서는 이를 비인간 행위자(non-human actor) 변수라 일컫는데, 단순한 사물이나 기술 또는 주변 환경 등이 위험 발생의 주체로 참여해 국가나 개인에게 영향을 가함으로써 이슈구조의 판도를 능동적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신흥안보의 문제는 이렇게 비인간 행위자에 의해 발생하거나 진화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진다. 마지막 특성은 위협의 비가시성(invisibility)에 관한 것으로 문제의 위협이 X-이벤트를 통해 확실히 존재를 드러내기 전에는 잠재적인 상태에 머문다는 점이다. 잠재적 신흥안보의 문제는 여전히 실재하는 심각한 위협이지만 아직 수면 위로 떠오른 위협이 아니라는 점에서 예측이 어렵고 따라서 발생 이전에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른다.

이 같은 특성들 때문에 신흥안보의 문제는 전통안보와 달리 그 위협이 극도로 치닫기 전에는 주요 안보 행위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수도 있다. 아직 안보문제로 여겨지지 않는 어떤 특정한 문제가 양질적 변화를 통해 그 위험성을 키우고 다른 이슈들과 연계되면서 국가 간 갈등으로 발전할 위험을 지니더라도 극단적 사건을 통해 그 위협을 수면 위로 드러내지 않는다면 실재하지 않는 위협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신흥안보의 문제 역시 일정한 수준의 안보화를 요구한다. 코펜하겐 학파가 강조하는 안보담론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다만 신흥안보의 문제가 요구하는 안보화는 코펜하겐 학파의 안보화와 다소 다른 목적을 가지는데, 후자의 경우 그 목적이 안보 담론을 통해 특정 (비안보)문제를 실존적 안보 위협으로 격상시키는 데 있다면 전자의 목적은 분명 실존하지만 창발 중에 있어 아직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위협의 가시성을 높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하튼 신흥안보의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위협이 X-이벤트를 거칠 때까지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안보화를 통해 위협에 대한 주요 안보 행위자들의 관심을 유도해 대비책을 마련해야한다.

신흥안보의 거버넌스: 네트워크 국가와 메타 거버넌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안보의 대상을 다양화하고 위협의 범주를 확장하려는 시도는 여러 방면에서 이루어져왔지만 안보 거버넌스, 다시 말해 안보문제에 대응하는 방식과 그 주체에 대한 논의는 국가 중심적 안보론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정체된 양상을 보여 왔다. 안보를 오직 국정(國政)문제로 바라보는 시각과 더불어 국민국가만이 안보문제를 해결할 자원과 능력을 가진 유일한 행위자라는 인식으로 인해 안보 거버넌스는 지금까지 국가 중심적 차원에서 이해되고 마련되어왔다. 1990년대에 들어 코펜하겐 학파가 안보화 행위자(securitising actor)의 역할을 소개하며 국제기구, 지역 협의체, 언론, 로비 조직 등 다양한 비국가 행위자들 역시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지만 이러한 시도 역시 문제 해결에 필요한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행위자로서 국가 이외에 다른 행위자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국가 중심적 사고에 갇혀있다는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신흥안보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도 여전히 국가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신흥안보의 거버넌스는 전통안보론이나 코펜하겐 학파가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른 국가의 역할을 요구한다. 복잡계 환경을 통해 발생하고 진화하는 신흥안보의 위협은 국가 중심적 전통안보의 발상에 기초한 방식으로는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 위협의 발생 원인과 발전 과정이 예측 가능한 조건에서는 정부가 위계적 국가 체제의 꼭대기에서 하위 행위자들을 통제하고 자원을 독단적으로 동원·활용하는 대응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지만, 만약 그렇지 않은 조건에서 기존의 전통안보 방식을 고집한다면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위협의 진원과 성격마저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또한 신흥안보의 문제는 전통안보의 위협과 달리 초국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국가는 지리적 한계를 넘어 여러 다른 국가 및 비국가행위자들과 협력할 줄 아는 유연성을 가져야하지만 주권과 영토성의 원칙에 기초한 국민국가로서는 이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흥안보의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새로운 국가모델이 수용되어야 한다. 여기서 새로운 국가모델이란 기존의 위계적·영토적 국민국가가 탈위계적이고 탈영토적인 형태, 즉 ‘네트워크 국가’의 형태로 변화한 것을 의미한다. 네트워크 조직이론(network organization theory)을 원용한 시각에서 보자면, 네트워크 국가는 정부와 ‘국가기구 내 여러 하위 행위자들의 수평적 관계가 활발해지는 조직’의 형태를 갖춘 국가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수평적 관계’라 함은 정부가 자신의 권한과 기능을 다양한 국내 하위 구성원들에게 일정하게 분산·위임함으로써 그들로부터 정당성과 신뢰 그리고 지지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국가기구 내 구성원들이 서로 의사, 정보, 자원 등을 공유할 수 있는 밀접한 소통·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뜻한다. 이렇듯 미시적 단계에서 시작해 창발의 과장을 거쳐 거시적 단계에 이르러 심각한 위협으로 나타나는 신흥안보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여러 다양한 국내 하위 행위자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협력함으로써 위협의 창발 과정을 수시로 파악하고 이를 억제해 나가야한다.

또한 신흥안보의 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네트워크 국가는 주권과 영토성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국가의 형태에서 벗어나 탈영토적 성격을 갖춤으로써 다른 국가 행위자와 더불어 민간단체, 다국적 기업, 지역 협의체, 국제기구 등 다양한 비국가행위자들과 상호보완적인 협력관계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러한 관계망은 정부 간 협의체에서부터 여러 국가 및 비국가행위자들이 복합적으로 참여해 범지구적 차원에서 만들어내는 글로벌 거버넌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이렇게 위계적·영토적 한계를 넘어 대내외적 차원에서 다른 구성원들과 신뢰를 쌓고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네트워크 국가는 기존의 국민국가 모델보다 더 열린 정체성을 갖춰야한다. 네트워크 국가의 열린 정체성이란 국가의 자아 정체성과 그 국가가 속한 구조적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자아 정체성은 단순히 국가의 속성과 주관적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안보문제를 중심으로 형성된 구조 속에서 자국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구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네트워크 국가의 정체성은 부동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상황에 맞춰 변화하는 유연성을 갖는다.

동시에 네트워크 국가는 배타적 국익에 집중하는 국민국가와는 달리 열린 국가이익에 대한 인식을 가짐으로써 다른 행위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상호적 공익 역시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야한다. 여기서 관건은 얼마나 균형에 맞게 국익과 공익을 추구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공익의 추구는 국제적 호응과 지지를 불러올 수 있지만 만약 그 과정에서 국익의 증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심지어 저해된다면 극심한 국내적 반발을 야기할 수 있다. 그렇다고 배타적 국익만을 증진할 목적으로 신흥안보의 전략을 전개한다면 문제해결을 위한 국제적 지지와 협력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네트워크 국가는 배타적 국익과 상호적 공익을 균형에 맞게 배합하여 추구함으로써 자신의 역할에 대한 국내적 요구와 국제적 기대를 최대한 만족시키고 이를 통해 신흥안보 거버넌스의 기틀을 마련해야한다 (신승휴 2016).

이처럼 대내적으로는 국내 하위 행위자들과 활발한 수평적 관계에서 소통하고 대외적으로는 타 국가 및 비국가행위자들과 협력해가는 과정에서 결국 네트워크 국가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중개자(broker)로서 다른 구성원 간의 이해관계를 적절히 조정해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고 협력 메커니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를 거버넌스의 측면에서 재해석하자면, 신흥안보의 거버넌스란 네트워크 국가가 떠오르는 위협의 유형과 그 진화 과정을 고려하여 국내적, 지역적, 국제적 그리고 초국적 차원의 거버넌스 체제들 중 위협과 관련된 몇 가지 거버넌스를 선택하고, 이렇게 선택된 상이한 거버넌스 메커니즘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그 차이를 적절히 조율해가며 운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어떻게 여러 층위에 걸쳐 존재하는 복수의 거버넌스를 동시에 효율적으로 운용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서로 다른 여러 거버넌스를 동시에 운용하게 될 경우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거버넌스의 시스템이 서로 충돌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각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행위자 간 이해관계가 상충해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렇다고 단일의 거버넌스를 통해 신흥안보의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위협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고려할 때 현실적이지 않은 대처방법이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으로 김상배는 ‘거버넌스의 거버넌스(the governance of governance)’라는 의미에서 ‘메타 거버넌스(meta governance)’ 모델을 제시하였는데, 메타 거버넌스란, ‘국가가 사안에 따라 그 개입의 수준을 적절히 조절하는 방식으로 여러 가지 거버넌스를 동시에 운용하는 관리양식’이라 할 수 있다 (김상배 2016b).

메타 거버넌스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어떤 위협에 맞서 어떤 거버넌스를 도입해야하는가’ 하는 질문을 제시함으로써 신흥안보 위협의 유형과 그에 적합한 거버넌스 형태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김상배는 위협의 ‘발생속도(speed)’와 ‘파급범위(scope)’의 측면에서 신흥안보 분야의 위협을 분석하여 그 유형을 파악하는 시도를 벌였는데, 먼저 발생속도와 관련하여 그는 신흥안보의 위협을 ‘돌발형’과 ‘점진형’으로 구분했다. 돌발형 위협은 발생과 동시에 짧은 시간 내에 시스템(구조 혹은 체제) 전체로 급격히 번질 수 있는 위협을 의미하며, 점진형 위협은 그 발생과 확산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시스템 전체를 급격히 마비시키거나 붕괴시킬 가능성이 적은 위협을 뜻한다. 전자의 경우, 시스템의 갑작스런 붕괴나 마비를 피하기 위해 집중 거버넌스의 도입이 적합하며, 반대로 후자의 경우에는 분산 거버넌스를 통해 대처할 수 있다.

한편, 신흥안보의 위협은 그 파급범위에 따라 ‘무한형’과 ‘한정형’으로도 구분될 수 있다. 무한형 위협은 그 발생 과정을 즉각적으로 인식하고 피해 범위를 예측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위협인 반면, 한정형 위협의 경우에는 파급의 범위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이를 조기에 인지하고 결과를 예측해 알맞은 대응책을 마련하기가 비교적 쉽다. 무한형 위협의 경우, 그 파급범위가 예측불가한 점을 고려하여 경계가 정해져 있지 않은 역외(域外) 거버넌스를 도입해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반면에 한정형 위협은 파급범위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역내(域內) 거버넌스를 통해 관리해가는 것이 좋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김상배는 신흥안보의 위협을 그 속성에 따라 돌발적-한정형, 돌발적-무한형, 점진적-한정형, 점진적-무한형 이렇게 네 개의 범주로 구별하고 각 범주에 속하는 위협군을 나열하는 한편, 각 위협군에 적합한 거버넌스를 제시하는 시도를 벌였다 (그림2 참고). 첫째, 돌발적-한정형의 범주에 속하는 위협은 국가 간 무력분쟁이나 자연재해처럼 발생과 동시에 그 위험이 재난의 형태로 빠르게 발전할 가능성이 높지만 파급범위가 한정적이며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역내-집중 거버넌스의 형태인 ‘정부 주도 모델’이 적합하다. 둘째, 돌발적-무한형의 위협은 원자력안보문제와 사이버안보문제와 같이 돌발적인 발생과 급격한 위험 확산으로 인해 단기간 내에 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킬 가능성이 높고 또 어느 선까지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려운 관계로 역외-집중 거버넌스의 형태인 ‘정부 간 협력 모델’을 통해 관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셋째, 점진적-한정형의 경우에는 인간안보나 사회안보의 문제처럼 위험이 점진적으로 확산되며 또 그 파급력이 미치는 범위가 주로 특정 국가나 지역에 한정되어 있어 역내-분석 거버넌스로서 ‘지역 참여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점진적-무한형 그룹의 위협은 환경이나 보건 차원의 안보문제처럼 비교적 긴 시간에 걸쳐 점차적으로 퍼져나가지만 그 파급범위가 초국적이기 때문에 역외-분산 형태인 ‘초국적 참여 모델’의 거버넌스가 적절한 대응방법이 될 수 있다 (김상배 2016b).

위협 유형과 거버넌스의 형태
그림 2. 위협유형과 거버넌스 모델 (김상배 2016b)

이렇게 신흥안보의 위협을 속성에 따라 범주화 한 뒤 그에 적합한 거버넌스를 도출해내는 시도는 문제해결에 필요한 주요 행위자들을 설정하고 그들 간 협력체계를 구상하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동시에 한계점 역시 존재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신흥안보의 문제는 이슈연계의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다른 안보문제들과 질적으로 중첩되거나 아예 복합되어 단일한 문제로 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 경우 해당 문제의 유형이 앞서 이야기한 범주들 중 하나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이미 설정된 위협유형에 따른 거버넌스 채택이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상배의 분석틀은 단일의 일차원적인 거버넌스가 아닌 다수의 거버넌스를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메타 거버넌스의 관리양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김상배. 2016a. 『신흥권력과 신흥안보: 미래 세계정치의 경쟁과 협력』 사회평론.

김상배. 2016b. “신흥안보와 미래전략: 개념적·이론적 이해.” 김상배 편.『신흥안보의 미래전략: 비전통안보론을 넘어서』 사회평론. pp.26-70.

김상배. 2018. 『버추얼 창과 그물망 방패: 사이버 안보의 세계정치와 한국』. 한울.

Buzan, B., O. Wæver and J. de Wilde, 1998. Security: A New Framework for Analysis. Boulder, Colorado: Lynne Rienner Publisher.

Herd, G., D. Puhl and S. Costigan, 2013. Emerging Security Challenges: Framing the Policy Context. GCSP Policy Paper 2013/15. https://www.files.ethz.ch/isn/169211/GCSP%20PP%202013-5.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