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6/1/2016 | ⓒ Image: The White House (Wikipedia)

1972년 2월 21일 성사된 미·중 상해공동성명(Shanghai Communique)은 중국이 아시아 지역의 패권을 미국에게 양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후 거의 반세기에 이르는 시간 동안 미국은 의심할 여지없는 아시아 패권국으로서 지역 질서를 주도해왔으며, 미국 중심의 패권체제 아래 아시아는 번영과 안정을 모두 향유할 수 있었다. 따라서 1972년 마오쩌둥과 리처드 닉슨 사이에 이루어진 아시아 패권 거래는 분명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득이 되는 거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로부터 43년이 흐른 지금 중국은 미국과 비견할만한 경제 강대국으로 성장하였으며, 중국의 이러한 눈부신 경제성장은 다시 한 번 이 거대한 아시아 국가를 강력한 군사강국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 나폴레옹은 중국을 잠자는 사자에 비유하며 이 사자가 잠에서 깨어나면 세계는 두려움에 떨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불행히도 그의 예측은 현실이 되었고 중국의 굴기는 아시아 지역의 안보 불안정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왜 중국의 굴기가 지역 불안정으로 이어지는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다양할 수 있지만 그 핵심에는 모두 미·중 관계가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국가들이며 특히 중국은 앞으로 더욱 부강해질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반면 미국은 이미 국력의 감소를 경험하고 있으며 따라서 아시아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할 능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중국의 지속적 성장과 미국의 점진적 쇠퇴는 결국 아시아 지역질서의 재편성으로 이어지며, 이러한 지역질서 재편성은 결국 지역패권의 재조정을 의미한다. 미·중 간 지역질서 재편성의 결과가 양국 간 평화적 타협과 전략적 전쟁 중 어느 방향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미·중 관계의 세력전이(Power transition) 구조가 이미 형성되어가고 있으며 이 구조가 양국 간 이해와 타협보다는 갈등과 경쟁의 성격을 더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미래 미·중 관계의 완전한 세력전이로 이어질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지만, 당분간 미·중 관계는 전략적 경쟁을 내포하는 세력전이 구조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미래 미·중 관계의 평화로운 세력변동의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필자는 세력전이론을 원용하여 현재 미·중 관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갈등과 그로 인한 세력이동 현상을 살펴 보고자 한다. 나아가 미·중 관계의 완전한 세력전이 혹은 평화로운 세력변동의 가능성을 전망하고자 한다.

세력전이론의 핵심 논지는 무엇인가?

세력전이론을 대표하는 학자로 잘 알려진 오간스키(A.F.K. Organski)는 국가 간 세력배분에 의해 형성된 위계적 국제질서가 기존 패권국과 도전국간 힘의 전이로 인해 변화될 때 세력전이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먼저, 오간스키는 국제체제를 무정부상태가 아닌 국가 간의 서열이 존재하는 위계적 구조로 바라보는데, 여기서 국가 간 서열은 힘의 배분 즉 국가 간 상대적 세력배분에 따라 결정되는 서열을 의미한다. 따라서 위계적 국제체제에서는 단일의 패권국이 서열구조의 최상층 부를 차지하며 그 아래 패권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국력을 가진 몇몇의 강대국들이 존재하고 이어서 중견국, 약소국들이 순차적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위계체제는 국가 간 상대적 세력배분 뿐만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국제질서에 대한 국가들의 만족도 역시 보여주는데, 이에 따라 오간스키는 국가들을 만족과 불만족 국가군으로 나누어 구별한다. 만족 국가군에는 현존질서를 지배하는 패권국과 그와 동맹관계에 있는 일부 강대국들이 있으며, 현존질서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일부 중견국 및 약소국들이 있다. 반대로 불만족 국가군에는 패권국과 현존질서에 강한 반감과 불만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오간스키는 이들 불만족 국가들이 패권국의 지배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지만 국력의 열세로 인해 패권국 주도의 현존질서에 일시적으로 순응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현존질서를 지배하는 패권의 힘이 약화되거나 불만족 국가군에서 패권국의 우세적 지위를 위협할만한 국력을 가진 도전국이 등장할 경우, 갈등과 경쟁을 내포하는 세력전이 구조가 형성된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오간스키는 불만족 국가군에 포함된 강대국들 중 하나가 패권에 도전할 만큼 강력한 국력을 가지게 될 때 세력전이가 발생한다고 본다. 따라서 국력신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오간스키는 국가의 국력은 동맹이나 전쟁과 같은 외부적 요인보다 산업화를 통한 경제성장과 같은 내부적 요인에 의해 증대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의 내부적 경제성장은 그 국가의 산업능력에 따라 잠재적 힘의 단계(Stage of potential power), 힘의 전환적 성장단계(Stage of transitional growth in power), 그리고 마지막으로 힘의 성숙단계(Stage of power maturity)를 거쳐 이루어진다고 규정한다. 먼저 잠재적 힘의 단계란, 국가가 아직 산업화 이전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국가의 경제력이 주로 농업생산력에 의존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국가가 산업화를 통해 농업국가에서 산업화된 국가로 변화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 인구의 대다수가 도시로 이주하고 공업에 종사하게 된다. 이때 국가는 힘의 전환적 성장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 단계에서 국가의 공업생산력과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하게 되고, 국가의 경제력이 증대함에 따라 군사력 및 대외 영향력 역시 강화된다. 그리고 마지막 힘의 성숙단계를 통해 국가는 완전한 산업화를 이루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힘의 성숙단계에 있는 국가는 국력의 감소를 겪게 되는데, 이는 국가의 국내총생산의 지속적인 증가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힘의 성숙단계에 있는 국가는 힘의 전환적 성장단계에 있는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더 강한 국력을 가지고 있지만, 경제성장의 속도 면에서는 후자가 전자보다 월등히 앞서기 때문에 두 국가 간 국력의 차이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패권국에 불만을 느끼는 강대국 즉 도전국이 힘의 전환적 성장단계를 통해 급격한 국력 증대를 이루어내고 그에 따라 패권국과 도전국 간 국력의 차이가 줄어들 때 국제체제의 세력재배분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 패권국과 도전국 간 세력전이구조가 형성됨을 의미한다.

미·중 관계의 세력전이는 가능할까?

앞서 주장한 바와 같이 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미·중 관계의 세력전이 구조의 형성은 이미 현재 진행 중이다. 미·중 관계는 국력 – 군사·경제력 – 의 격차 감소와 불만족 증가라는 세력전이의 기본조건을 점점 더 확실히 갖추어가고 있다. 물론 완전한 세력전이가 발생하려면 도전국의 국력이 패권국의 그것을 완전히 넘어서야하는 충분조건 역시 갖추어져야하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미·중 관계의 완전한 세력전이가 이루어질 것인가를 확신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미·중 간 세력전이 구조가 이미 형성되어가는 상황에서 양국 간 완전한 세력전이의 가능성을 신중히 살펴보아야 필요는 여전히 있다.

세력전이론의 시각에서 본 중국은 분명 힘의 전환적 성장단계에 있는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중국은 미국의 패권질서가 제공하는 아시아 지역의 안정 속에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어냈으며 또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은 이미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높으며 머지않은 미래에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력을 측정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잣대라고 할 수 있는 인구 면에서도 역시 중국은 미국을 앞서고 있다. 중국의 인구는 숫자의 힘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13억이 넘는 중국의 인구는 방대한 노동력을 의미한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보다 4배 더 많은 노동인구를 자랑한다. 물론 산업화 시기 이전처럼 국가의 상대적 경제규모가 노동인구와 비례하게 커지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국가 간 노동자의 부가가치 생산력의 차이는 존재한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생산성 격차는 1980년대 중국의 본격적인 경제성장이 시작된 이후부터 점차 좁혀지기 시작했고 중국 노동자의 부가가치 생산력은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이는 경제력의 측면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임계점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강력한 경제력이 꼭 강력한 국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은 모두 막강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의 경제력은 언제나 강력한 정치권력으로 전환되었다. 중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급격한 경제성장을 시작한 이후로 중국은 자국의 외교적 영향력과 전략적 무게감을 키우는데 집중해왔고, 그 결과 중국의 외교·전략적 힘은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강화되었다. 군사력의 측면에서는 아직까지 미국이 중국을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지만, 오늘날 국가 간 군사 균형은 단순히 국방예산과 실질적 군사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지리적 위치와 미·중 간 비대칭적 군사력은 오히려 여러 방면에서 중국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먼저, 미국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자국의 이해관계를 지켜야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반면 중국의 이해관계는 주로 아시아에 집중되어있다. 따라서 중국은 자국의 전략적 무게를 아시아에 한정시킬 수 있는 이점을 가진다. 이는 중국이 취할 수 있는 두 번째 이점과 관련이 있다. 만약 미·중 군사전략의 충돌이 일어난다면 그 배경은 주로 아시아에 국한될 것이며 따라서 중국은 해상억지력(Sea denial)의 이점, 즉 손쉽게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이점을 갖는다. 따라서 중국의 해상억지력은 미국의 전략적 행동을 억제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현재 중국은 꾸준히 해공군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의 군사기반은 점차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에 대한 중국의 만족 여부이다. 이는 오간스키가 말하는 불만족 국가군에 과연 중국이 포함되는가를 묻는 질문과 관련이 있다. 1972년 상해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에게 아시아 지역패권을 양도한 이후 중국은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 속에서 큰 불만 없이 자국의 경제성장에만 집중해왔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와 패권구조에 만족한다고 볼 수는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중국이 미국과 극명한 대립각을 세우거나 미국 리더십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출하지 않은 이유는 미국의 존재가 자국의 경제성장에 이로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패권질서는 1980년대부터 중국이 경제성장과 국내안정을 이루는데 필요한 환경을 제공했다. 중국은 과거 덩샤오핑이 취한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에 따라 힘을 기르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야망과 불만을 일시적으로 감추고 있었을 뿐이다. 최근 들어 아시아 지역의 현존질서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조금씩 바뀌고 있으며 미·중 관계와 미국 패권에 대한 중국의 불만 역시 점점 더 뚜렷해져가고 있다. 중국이 역설하는 ‘신형대국론’이 이를 증명하는데, 이는 더 이상 중국이 미국의 패권질서에 만족할 의도가 없으며 따라서 역내 세력재배분이 불가피하다는 중국의 입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역시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에 대한 중국의 불만이 정책으로 나타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일부 낙관론자들은 원만한 미·중 관계가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필요한 만큼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에 대한 중국의 불만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현존질서에 대한 중국의 만족 여부를 평가함에 있어 중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만을 고려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과거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국가가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을 돈과 두려움 그리고 명예에서 찾았다. 여기서 특히 마지막 명예는 오늘날 국가의 지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세력전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위계적 국제질서에서 더 높은 서열에 자리하고자 하는 국가의 목적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과거 아시아 지역의 패권국으로 지역질서를 지배한 적이 있는 중국에게 패권국의 지위는 어쩌면 당연히 되찾아야할 명예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리고 아시아 지역패권에 대한 중국의 야망이 커질수록 미국 중심의 현존질서에 대한 중국의 불만은 더 깊어질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국력신장은 아시아 지역의 현존질서에 대한 중국의 불만과 재편성 요구를 동시에 증가시키고 있으며, 이는 지역패권을 둘러싼 미·중 관계의 세력전이 구조가 이미 형성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중 관계의 세력전이 구조는 위계적 국제질서에서 기존의 패권구조를 수정하려는 중국과 이를 억지하려는 미국의 갈등으로 인해 결코 평화적인 성격을 띠지 않고 있다. 물론 중국의 군사력 열세를 고려할 때 아직은 미·중 간 완전한 세력전이와 그에 따른 양국 간 전쟁 발발의 가능성을 논하기는 이르지만, 중국의 지속적인 국력신장과 그에 따른 현존질서에 대한 불만족 증가는 미·중 간 세력전이 구조를 계속해서 경쟁과 대립의 형태로 발전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관계의 평화로운 세력변동은 아시아 지역의 권력 분담에 대한 양국의 합의를 전제로 하는데, 현재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상대로 취하고 있는 외교정책의 성격을 고려할 때 이는 기대하기 힘든 관계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중 관계가 꼭 양국의 국력격차나 서로에 대한 의도만으로 결정된다고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양국 간 평화의 가능성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다. 따라서 미·중 관계의 평화로운 세력변동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