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1/2/2021

Ⅰ. 한국이 처한 구조적 상황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은 미국을 동맹국으로, 중국을 최대 무역국으로 두고 있는 한국에 심각한 위기가 되고 있다. 특히 2018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무역전쟁에 돌입하고, 비슷한 시기 미중 양국이 화웨이 사태를 중심으로 갈등 국면에 접어들게 되면서 한국은 미중 양자택일의 압박을 더욱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 집권 시기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미중 양자택일의 압박을 회피하고자 노력해왔다. 사실상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나 쿼드(QUAD) 등 중국 봉쇄를 목적으로 한 연대에 참여를 거부하는 한편 인도-태평양 용어 자체가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그 사용을 자제해왔다.

한국의 이와 같은 외교기조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국 정부에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할 것을 지속해서 요구해왔는데, 특히 한국의 신남방정책이 인도-태평양 전략과 공통된 목표를 지향한다면서 양국 간 협력 강화를 강조해왔다. 예로 2018년 11월 마크 내퍼 미국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과 연관성이 많다. 여러 방식의 상호보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고, 2020년 12월에도 그는 한국의 신남방정책이 지향하는 3대 원칙인 평화, 사람, 번영이 인도-태평양 전략이 추구하는 개방, 포용, 투명, 좋은 지배구조, 국제표준 존중 등의 원칙과부합하다며 양국 간 정책의 조율을 촉구하였다.

한국에 대한 미중 양자택일의 압박은 지정학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도 역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2018년 미국 내에서 중국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와 관련한 안보 논란이 제기되고 그 이듬해인 2019년 트럼프 행정부가 우방국들에게 화웨이 장비 도입을 배제할 것을 본격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은 더욱 어려운 구조적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2019년 6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5G 네트워크상 사이버 보안은 동맹국 통신 보호의 핵심 요소”라는 점에서 5G 통신망 사업은 신뢰할 수 있는 공급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화웨이와 협력관계에 있는 한국 기업과 이를 묵인하는 한국 정부에 화웨이 퇴출 압박을 가하였다. 또한 그는 “미국은 민감한 안보 정보를 수용할 수 없는 위험 수준으로 노출시키고 싶지 않다…그 말은 우리가 동맹국들과 정보 공유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화웨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결정이 한미동맹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2020년 7월 말 기준 국내에 구축된 5G 무선국 장비 427,967개 중 화웨이 장비는 38,808개로 약 9%로 LG유플러스가 이를 사용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국내 이동통신 3사 중 유일하게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으며, 2013년 4G LTE 구축 과정에서부터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작년 기준 당사 LTE 장비 중 약 30%가 화웨이 장비이다. 현재 LG유플러스는 5G 네트워크 구축이 기존 LTE 장비와 5G 장비를 연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호환성을 위해서라도 화웨이의 5G 장비를 사용해야 한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화웨이 외에도 삼성전자, 노키아, 에릭슨을 5G 공급업체로 두고 있지만, 수년간 화웨이 장비를 사용해왔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미 구축된 장비를 걷어내고 다른 공급업체의 장비를 설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도입된 화웨이 장비를 타사 장비로 모두 교체할 경우 수조 원에 달하는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LG유플러스는 이미 구축된 장비는 그대로 사용하겠다는 뜻을 견지하고 있다.

한편, 지난 2월 초 미국은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동맹국 그리고 일본과 함께 5억달러(약 5549억원) 규모의 5G 이동통신 발전기금인 ‘다국간 통신보안 기금(Multilateral Telecommunications Security Fund)’을 설립하기로 하였다. 이는 높은 경제성을 앞세워 5G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을 견제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미국 정부는 해당 기금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5G 기술 개발, 기기 공급망 확충, 신뢰할 수 있는 제조업체의 이용 촉진 등을 설립”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 밝혔다. 이처럼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호주와 일본이 다국간 통신보안 기금 설립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화웨이 퇴출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Ⅱ. 미중경쟁과 화웨이 사태에 대한 한국의 인식

최근 한국 정부가 추진해온 대미, 대중 외교는 기본적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통한 미중 간 균형 유지에 초점을 맞춰왔다고 볼 수 있다.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은 동남아시아 순방을 앞둔 시점에 싱가포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외교를 중시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도 더 돈독하게 만드는 균형있는 외교를 하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한국은 미중 간 양자택일의 압박을 최대한 회피하거나 완화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의 핵심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들에 직접적으로 연루되는 것을 경계해왔고 이러한 이유로 이들 문제에 대한 정부의 분명한 입장표명을 가능한 한 지양해왔다. 이와 같은 외교 기조는 화웨이 사태에 대한 대응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한국은 이미 LG유플러스가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화웨이 퇴출을 유보해왔는데, 미국 주도의 국제적 화웨이 배제운동에 참여할 시 중국과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될 것을 우려한 데 따른 결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정부가 공식적으로 화웨이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과의 관계를 언급한 적은 없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로 지금까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대중국 유화정책이 지속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가 화웨이 사태에 대응하는 데 대중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19년 6월 7일 한국 정부에 대한 미국의 화웨이 퇴출 요구가 계속되는 가운데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정부로서는 국가 통신보안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관리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며 민간기업의 의사결정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원칙적 입장을 강조하였다. 또 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미 군사안보 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없다…우리나라에서 5G 네트워크 사용 비율은 10% 미만이고 군사안보 통신망과도 확실히 분리돼 있다”면서 “이분법적 접근보다는 양국의 건설적 협력이 가능한 분야에서 (협력의) 공간을 확대해 나가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같은 해 6월 외교부 역시 “정부로서는 기업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군사 통신보안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안을 강구해 나가고자 한다”는 뜻을 밝혔다.

2020년 중순 영국이 화웨이 완전 퇴출을 결정하게 되면서 다시 한번 화웨이 사태가 이슈화되었을 당시에도 한국 정부는 화웨이 문제가 민간 차원에서 다뤄질 문제라면서 배제 결정을 유보하였다. 2020년 7월 1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통신 3사 CEO 간담회 결과 브리핑에서 “영국 정부가 화웨이 장비를 아예 금지시켰는데…우리 정부는 과거 화웨이 장비에 대한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가”를 묻는 언론사의 질문에 홍진배 통신정책국장은 해당 문제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고 답하면서 “지금 5G 보안협의회에서 보안성에 대해서 점검을 지금 진행하고 있고 이것을 분석해서 피드백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언급하였다. 2020년 7월 23일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도 김인철 대변인은 화웨이 5G 장비 도입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며 정부가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김인철 대변인은 “민간 부문에서 장비 도입은 정책적으로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한 사안”이라며, “정부는 안전한 5G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민간 분야와의 협력을 포함해서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당국의 이 같은 입장표명은 화웨이 사태를 민간 차원의 문제로 국한함으로써 이를 안보 문제로 격상시키지 않으려는 의도가 우회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Ⅲ. 미중 사이 ‘맺고 끊기’의 중개외교

한국은 미중 간 균형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외교적 조치를 최대한 지양하는 모습을 보여왔고, 이 점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 파이브 아이즈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2020년 9월 강경화 前외교부 장관은 쿼드에 대해 “다른 국가들의 이익을 자동으로 배제하는 그 어떤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쿼드 플러스 구상에 미온적인 입장을 밝혔다. 2020년 1월 미국이 대북 정보와 관련한 협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를 파이브 아이즈 동맹에 참여시켜 파이브 아이즈 확대판을 발족하였다는 보도가 일본 언론을 통해 나왔을 당시에도 정부 차원의 입장표명은 없었다. 한편, 영국 정부가 2020년 5월 본격적으로 화웨이 배제에 나서면서 화웨이를 대신할 5G 공급업체를 찾기 위한 ‘D10’ 동맹을 결성하기로 했다는 소식에도 역시 한국 정부는 미온적 태도를 일관했다. D10 동맹 구상에는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G7 국가와 호주, 인도, 한국이 포함되었는데, 이러한 소식에 대해 우리 정부 당국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위 관계자는 “아직 D10에 대해 전혀 들은 바 없다…한국 정부와 사전에 교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비슷한 시기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G7에 러시아, 인도, 호주, 한국을 초청한 데 대해서는 환영의 뜻을 전하였다. 미국의 G7 추가 초청에 대해 청와대는 “세계 외교질서가 낡은 G7 체제에서 G11 또는 G12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며…G20 가입도 외교적 경사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G11또는 G12 정식 멤버가 되면 우리나라의 국격 상승과 국익에 큰 도움 될 것”라며 초청에 기꺼이 응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청와대는 한국의 G7 회의 참석에 중국이 반발하진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렇듯 한국 정부는 쿼드 플러스, 파이브 아이즈 플러스, D10 동맹 구상처럼 대중국 봉쇄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는 협의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거나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면서도, 러시아가 초청된 G11 구상은 상대적으로 중국을 덜 자극할 것이라는 점에서 이에 대해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화웨이 문제에서도 역시 한국은 미국의 화웨이 장비 퇴출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며 거리를 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20년 8월 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9년 4월 5G가 상용화된 이후 최초로 시행한 ‘5G 서비스 품질평가’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해당 평가결과, 삼성전자의 장비를 사용한 SK텔레콤과 KT가 5G 다운로드-업로드 속도에서 화웨이 장비를 구축한 LG유플러스보다 더 빨랐다. 5G 서비스 품질평가는 3사 통신사뿐만 아니라 정부 당국에도 매우 중요했다고 할 수 있는데, 평가결과가 발표되기 전부터 언론은 해당 평가가 정부 당국에 압박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화웨이 장비를 사용한 LG유플러스의 서비스 품질에 대한 평가가 화웨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2020년 8월 5일 발표된 5G 서비스 품질평가에서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과 KT에 다운로드 속도 면에서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화웨이 장비 사용에 대한 기존 입장을 선회하지는 않았다. 현재 LG유플러스는 화웨이 외에도 삼성전자, 노키아, 에릭슨을 5G 공급업체로 두고 있지만, 서울·수도권 지역 통신망 구축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어 화웨이 장비 의존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정부는 LG유플러스의 이러한 입장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품어왔는데, 2020년 7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 SK텔레콤과 KT만을 ‘깨끗한 업체’로 거론했고, 로버트 스트레이어 미국 국무부 부차관보는 “LG유플러스 같은 기업들은 믿을 수 없는 공급업체에서 믿을 수 있는 업체로 옮길 것을 촉구한다”며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했다.

2020년 말에도 화웨이 장비 사용에 대한 LG유플러스의 고민은 더욱 커졌는데, 이는 미국 의회가 화웨이의 5G 장비를 도입한 국가들에 미군과 미국의 전략무기 배치를 불허 또는 철회하는 조항을 마련하였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 6일 미 의회의 상하원은 ‘2021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을 발의하면서 해당 법안에 자국 병력이나 군사장비를 해외에 배치할 때 주둔 대상 국가가 화웨이 등 중국 통신기업의 5G 장비를 도입하였는지 여부를 고려하는 조항을 넣었다. 또한 해당 법안에는 ‘위험을 줄 수 있는 업체’로 중국의 화웨이와 ZTE 등이 직접적으로 거명되었다. 국방수권법안은 미 의회에서 초당파적 합의를 통해 마련된 만큼 바이든 행정부의 집권 하에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이 같은 강경 대응은 2020년 10월 14일 제5차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SED) 화상회의에서 한국 정부 당국자가 미국 측의 화웨이 퇴출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왔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에 상당한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본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미국의 ‘클린 네트워크(Clean Network)’ 동참 요구에 대해 “우리 이동통신 사업자가 특정 업체 제품을 사용하느냐 안 하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관계 법령상 민간 기업이 결정할 사항”이라는 기존 입장과 함께 “관련 기관 및 부처와 협의가 필요한 사항인 만큼 검토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재차 거부 의사를 전달하였다. 미국의 국방수권법안에 대해 LG유플러스는 “미군 기지가 있는 평택, 의정부를 비롯해 그 주변 지역은 물론 미군 군내에서는 화웨이를 쓰지 않고 에릭슨 장비를 쓰고 있다…보안 부분은 철저히 준비를 하고 있다”며 안보 우려를 부인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이번 사안에 대해 5G 공급업체 선정은 민간기업이 결정할 문제라면서 5G 네트워크 관련 안보 우려에 대해서는 미국과 협의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놓았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이러한 외교 행태가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전략과 화웨이 퇴출 압박이 점차 강화되는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를 위해 미국을 상대적으로 밀어내는 것으로 비칠 수 있음을 우려한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집권 내 중국에 유화적인 태도를 일관해왔다. 예로, 코로나19 사태 발생 초기에 세계 각국이 중국발 외국인 입국을 전면 차단하는 강경책을 택하는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는 중국발 외국인 입국을 허용하는 한편 중국에 코로나19 방역물자를 긴급 지원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중국 정부는 한국이 마스크 품귀 현상을 겪을 당시 마스크 110만 장을 지원하였다. 한국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된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을 실현하는 데에도 강한 의지를 보여왔는데,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의 방한은 작년에 한 번 추진됐었는데 코로나 상황이 나빠져서 성사되지 못했다. 올해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고 여건이 갖춰지는 대로 조기 방한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략적 모호성에 입각한 한국의 미중 간 균형외교는 인도-태평양 지역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의 행보와 매우 대조적이다. 이미 쿼드를 통해 미국과 긴밀한 안보협력을 이어온 일본은 파이브 아이즈 동맹과도 정보공유를 통한 협력을 지속해서 강화해오고 있다. 2020년 8월에는 영국이 일본에 정식으로 파이브 아이즈 동맹국으로서의 참여를 제의할 계획에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하였다. 호주 역시 쿼드와 파이브 아이즈를 통해 미국과 발을 맞추고 있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는 쿼드 4개국 외교장관 회상회의와 영국, 프랑스, 독일이 포함된 E3 그룹 외교장관 화상회의를 열어 코로나 대응, 기후변화, 해양 안보, 민주주의 강화, 중국 문제 등을 논의하였다. 논의된 문제들이 모두 한국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그 어느 회의에도 참여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이미 바이든 행정부의 ‘민주주의 동맹외교’에서 한국이 소외되는 코리아 패싱이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Ⅳ. 화웨이 사태 대응을 위한 연대외교

현재 한국은 화웨이 사태에 대응하는 데에 있어서 소위 동류국가들과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진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의 클린 네트워크 동참 요구에 대처함에 있어서만큼은 이웃 국가인 일본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20년 10월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도쿄를 방문해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가진 회담에서 일본의 클린 네트워크 참여를 요구하였으나, 모테기 외무상은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틀에는 참가하기 어렵다…중국을 배제하는 틀에 참가할 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당하고 패소할 수 있다”면서 사실상 참여를 보류한다는 방침을 미국에 전달하였다. 일본의 이 같은 결정은 중국과의 관계 악화에 따른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우려한 데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반(反)화웨이’를 선언하지 않았을 뿐 NTT, KDDI, 소프트뱅크, 라쿠텐 등 일본 기업들이 이미 클린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는 이미 자국 5G 통신망 구축 사업에서 화웨이를 지명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화웨이를 배제하는 운용 방침을 시작했다면서, 다른 분야에서도 5G와 같이 안보상 우려가 발생하지 않도록 처리하겠다는 뜻을 미국에 전하였다.

일본과 한국은 클린 네트워크 참여를 보류하기로 했다는 점에선 입장을 같이하고 있지만, 한국과 달리 일본은 쿼드와 파이브 아이즈 동맹의 틀 내에서 미국과의 신뢰 형성을 꾸준히 이뤄왔다는 점에서 양국이 비슷한 위치에 서 있다고 보긴 어렵다. 더욱이 최근 외교적 갈등으로 급격히 악화된 한일관계를 고려할 때, 화웨이 사태 대응에 있어 양국 간 협력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미일 3각 공조를 위해 한일 간 관계 회복을 촉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 양측의 협력 의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취임 직후 모테기 일본 외무상과 가진 전화통화에서 한미일 3각 협력과 쿼드를 포함한 지역 협력을 환영한다는 뜻을 전했지만, 일본 측은 쿼드를 통한 연대 강화만을 강조했을 뿐 한미일 간 협력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취임 후 문재인 대통령과 가진 첫 전화통화에서 한일관계 개선과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은 “양 정상은 한일관계 개선과 한미일 협력이 역내 평화와 번영에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 봉쇄에 초점을 맞춘 미국, 일본과 달리 한국은 한미일 3각 공조를 한반도 문제해결의 조건으로 보고 있어 화웨이 문제를 비롯한 여러 이슈 분야에 걸친 한미일 간 긴밀한 연대는 당장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로선 한국이 화웨이 사태 대응을 위한 연대외교를 추진해볼 수 있는 대상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아세안 국가들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은 아세안 회원국들과 디지털 분야 다자협력을 모색해오고 있다. 지난 1월 22일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제1차 한·아세안 디지털 장관회의에서 아세안 10개 회원국 장관들과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하였다. 한국과 아세안 회원국의 당국자들은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하며 접근성 높은 디지털 생태계 구축’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이를 반영한 공동성언문을 발표하였다. 특히 5G 기술과 관련하여, 한국은 자국의 5G 상용화 경험을 아세안 국가들에게 전수하기 위한 ‘5G 대화협의체 운영 계획’을 제시하였다. 이들 아세안 국가는 화웨이 사태와 관련하여 한국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류국가로 분류될 여지가 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은 자국 5G 통신망에 화웨이 장비를 도입해 사용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의 경우 화웨이 장비를 소규모 지역의 5G 통신망 구축을 위해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국가 모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압박을 받고 있기도 하다. 특히 필리핀과 태국은 미국의 군사 동맹국이며, 싱가포르는 미국, 호주와 긴밀한 안보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더욱이 현재 아세안 내부적으로 미중 양자택일의 압박을 완화하기 위해 5G 공급업체 다각화를 모색하는 흐름이 관찰되고 있으므로 아세안과의 다자적 차원의 협력 모색은 한국에 유익할 것으로 평가해볼 수 있다. /끝/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