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6/12/2018 | ⓒ Image: R. D. Ward, US Department of Defense (Wikipedia, Public Domain)

Ⅰ. 머리말

1999년 9월 4일 아침, 유엔 주관하에 열린 동티모르 독립투표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투표에서 동티모르인의 79%가 인도네시아로부터 자국의 독립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결과가 발표되고 불과 4시간 뒤, 동티모르 내 친(親) 인도네시아 성향의 민병대가 데보스(Demos) 지역 마을에 폭력과 방화를 자행하기 시작하였고, 얼마 가지 않아 동티모르 전 지역으로 폭력행위가 확대되면서 대대적인 유혈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사태는 인도네시아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외교적 압박과 더불어 호주가 주도하는 다국적군의 개입 결과로 10월 인도네시아군이 동티모르에서 철수하게 됨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이 사태를 통해 동티모르는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독립 정부를 수립하고 2002년 9월 191번째 유엔 회원국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동티모르 사태가 전개된 불과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동티모르는 약 1,500여 명의 민간인 사망과 300,000여 명의 난민 발생이라는 비극을 겪어야만 했다.

지금까지 1999년 동티모르 사태는 크게 두 차원에서 연구되어왔다. 그 첫 번째는 인도네시아 정부와 동티모르 내 친(親) 인도네시아 민병대가 자행한 반인도주의적 범죄를 분석한 연구이며(McDonald 외 2002), 두 번째는 동티모르 사태 해결을 위해 다국적군 파병을 주도한 호주의 외교적 동기와 전략에 관한 것이다(White 2008; Connery 2010; 박지은 2015). 전자의 경우에는 동티모르 사태를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봄에 따라 국가주도적 폭력(state-led violence)의 한 사례로서 위기의 성격과 전개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후자는 사태 해결 과정에 좀 더 그 초점을 맞춰 호주를 중심으로 하는 다국적군이 어떤 외교적 동기와 전략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는지, 또 사태의 위협을 완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전개하였는가를 밝히는 데 유용한 분석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주로 동티모르 사태의 원인이자 가해자로 규정된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의 독립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안보적 인식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간과하는 한계를 가진다. 다시 말해, 동티모르 사태의 발생과정에서 발견되는 인도네시아의 입장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아예 조명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글은 동티모르 사태 발생의 배경과 전개과정에서 발견되는 인도네시아의 안보적 이해관계에 주목함으로써 동티모르의 독립이 당시 국가체제 수립 단계에 있던 인도네시아에게 심각한 안보적 위협이 되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동티모르의 독립 시도는 인도네시아의 국가 통합을 유지해온 수하르토(Suharto) 대통령의 ‘신질서(New Order)’ 체제에 대한 도전이었고, 동티모르 사태가 발생하고 호주를 중심으로 하는 다국적군이 사태 해결을 위해 군사적 개입을 단행하자 인도네시아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에도 직면하게 되었다. 국가체제의 수립과정에 있는 제3세계 국가에게 분리운동(secessionist movement)은 외부의 침략만큼이나 치명적인 위협일 수밖에 없으며, 특히 분리운동이 내부적 반란(insurgency)이나 국가전복(subversion) 등의 형태로 표출될 경우, 이는 국가안보와 직결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글은 동티모르 사태가 발생한 시점에 인도네시아를 국가체제 수립과정에 있는 제3세계 혹은 서발턴(subaltern) 국가의 하나로 보고, 이러한 시각을 통해 당시 인도네시아의 안보 현실을 돌아보는 한편 인도네시아 정부에게 동티모르의 독립 시도가 어떤 성격의 그리고 어느 정도의 위협이였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서구 중심적 국제정치이론이 아닌 주변부 국가들의 국제정치적 현실과 안보적 이해관계에 주목하는 서발턴 현실주의(subaltern realism)의 시각을 원용하여 동티모르 사태와 관련한 인도네시아의 이해관계를 분석할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동티모르 사태를 분석한 기존 연구들이 간과한 인도네시아의 안보 현실을 조명함으로써 인도네시아를 가해자로 규정한 채로 사태를 분석하는 접근법이 사건의 전체적인 배경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먼저 서발턴 현실주의 이론의 가정과 핵심주장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서발턴 국가로 분류되는 국가군의 안보 현실과 이해관계가 무엇인지, 또는 이들 국가를 위협하는 안보위협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어서 동티모르 사태 발생 당시의 인도네시아를 서발턴 국가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인지 평가하기 위해 인도네시아가 오랫동안 직면해온 분리주의운동과 반정부 무장반란의 사례들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티모르 독립 시도와 다국적군 개입이 서발턴 국가로서의 인도네시아에게 어떤 의미의 사건이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서발턴 현실주의: 서발턴 국가의 안보 현실

서발턴 현실주의 시각을 처음 소개한 국제정치학자 모하메드 아윱(Mohammed Ayoob)은 주류 국제정치이론들이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이고 강대국 중심적인 배경 속에서 탄생해 발전되어옴에 따라 국제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제3세계 국가들의 국제정치적 현실과 안보적 이해관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왔음을 비판한다. 국제정치이론의 불평등성에 대한 비판으로 간략하게 정리되는 그의 주장은 주류 국제정치이론들이 현대 국제체제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무력충돌의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는 데 실패해왔으며, 또 국제사회를 구성하는 국가 다수의 대내외적 행동양식을 설명하는 데에도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Ayoob 2002).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아윱은 기존 이론들의 강점을 부분적으로 원용하여 제3세계 국제정치 현실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보완적 시각(perspective)으로서 서발턴 현실주의를 제시한다.

이 글에서는 서발턴 현실주의가 정의하는 안보의 대상(referent object of security)과 위협의 범위(scope of threat)에 특히 주목하여 어떤 국가가 서발턴 국가로 분류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윱에 의하면, 서발턴 현실주의는 제3세계 국가들을 위한 국제정치적 시각으로서 세계 주변부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국제정치적 현실과 그들의 이해관계 및 안보적 위협인식을 조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렇게 분석의 대상을 제3세계 국가군으로 제한한 것은 강대국 중심의 국제정치론이나 중견국 외교론처럼 특정 국가군의 외교적 행태를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제사회를 구성하는 국가들 다수가 제3세계 국가, 즉 서발턴 국가라는 점에서 국제정치이론의 고질적인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서발턴이란, ‘하위계층’ 혹은 ‘하위주체’로 번역될 수 있지만, 아윱이 의미하는 서발턴은 국제체제 내에 존재하는 국가 중 아직 국가형성 과정 중에 있는, 그래서 대외적인 위협보다는 내부적으로 발생하는 위협에 더 많이 노출된 국가를 뜻한다(Ayoob 1995).

서발턴 현실주의가 기존 주류 국제정치이론들과 가장 뚜렷한 차이를 가지는 부분은 위협과 안보에 대한 해석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전통적인 주류 이론들의 시각에서 볼 때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는 국제체제의 급변이나 강대국 정치 등에 의해 발생하는 무력충돌 혹은 ‘밖으로부터의 압박과 공격’이지만, 서발턴 현실주의의 시각에서는 국가형성을 방해하는 문제들이 안보위협으로 여겨진다. 즉, 국가형성 과정에 있는 국가의 영토와 제도 그리고 지배세력을 위협하는 문제들이 안보문제의 지위를 얻는 것이다. 아윱은 안보를 정치적 차원에서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다시 말해, 안보는 철저히 국가안보(state security), 혹은 국가의 정권 안보(regime security)의 맥락에서 이해되고 정의되어야 함을 뜻한다. 따라서 비정치적 영역, 예컨대 경제나 환경 등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안보위협의 지위를 얻기 위해선 국가안보와 정권안보를 위협하는 문제이어야만 한다.

비록 서발턴 현실주의적 시각이 내부적 위협을 강조하고 있지만, 꼭 내부적으로 발생하는 위협만을 안보문제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서발턴 국가의 영토, 제도, 집권 세력은 내부적 문제와 외부적 문제에 모두 위협받을 수 있다. 다만, 제3세계 국가군에 속하는 국가들의 경우에는, 그 특성상 국가형성 단계에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외부적인 위협보다는 국가 내부적으로 발생하는 위협에 더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발턴 국가는 완전한 영토적·제도적 구조를 확립하지 못한 탓에 분리주의, 반란, 국가전복, 테러 등의 위협에 자주 그리고 쉽게 노출된다. 이러한 내부적 위협들은 국가형성을 주도하는 집권세력(governing regime)의 정당성을 약화하는 한편 국가형성에 있어 필수적인 사회적 통합과 응집력을 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서발턴 현실주의가 규정하는 안보의 대상은 국가의 영토적·제도적 구조와 그 국가의 집권세력이라 할 수 있다. 아윱이 서발턴 현실주의를 새로운 이론이 아닌 보완적 시각이라 한 이유는 그의 이론이 이처럼 여전히 국가만을 국제정치(안보)의 대상으로 보는 국가중심적 이론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한편, 아윱은 국가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 중 인구(population)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인간안보(human security) 학자들과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안보 개념이 폭력과 궁핍으로부터의 개인의 해방을 안보로 정의함에 따라 보편적인 개인(인간)들을 안보의 대상으로 여긴다면(Kerr 2013: 104-108), 서발턴 현실주의는 여전히 국가의 영토적·제도적 구조 내에 속한 개인(들)의 생존과 안전에만 관심을 둘 뿐이며, 그마저도 인구의 안보가 국가의 영토, 제도, 통치권력체의 안보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질 때에만 중요하게 여긴다.

약소국으로 분류되는 국가일수록 국가안보와 정권안보가 더 동일시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엔이 인정하는 193개의 – 비독립 국가를 합할 경우 200개가 넘는 – 국가 중 소수의 선진국 그리고 물질적 자원을 보유한 개발도상국을 제외한 나머지 다수의 약소국은 대외적인 위협보다 국가 내부적으로 발생하는 국내적 위협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으며, 이들 국가에서는 제도적 장치와 영토적 경계가 확고히 자리 잡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국가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통합과 응집력은 약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통치권력의 안보 역시 취약한 상태를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취약한 상태에 놓인 정권이 자신의 안보와 권력을 강화하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정권안보를 위협하는 내부적 문제들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Jackson 2013: 162-163). 약소국의 이러한 ‘불안 딜레마(insecurity dilemma)’가 정권안보와 국가안보를 하나로 묶는 매개의 기능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불안 딜레마를 겪을 수밖에 없는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 다시 말해, 서발턴 국가의 필요조건은 무엇인가? 제3세계 약소국의 불안 딜레마를 분석한 잭슨(Richard Jackson)은 약소국이 국가의 세 가지 기본 요소를 갖추지 못할 때 불안 딜레마에 갇힐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효과적인 제도, 폭력 수단의 독점, 그리고 국가 관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이다(Jackson 1990). 이러한 요소를 갖추지 못한 국가는 불완전 (incomplete) 혹은 준(quasi) 국가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이 국가의 정권은 끊임없이 내외부적 위협에 시달린다. 비슷한 맥락에서 약소국을 분석한 또 다른 연구는 국가의 권력을 전제적 권력(despotic power)과 기반 권력(infrastructural power)으로 나누어 국가의 제도적 역량을 평가하는데, 여기서 전제적 권력은 국민에게 규칙을 부여할 수 있는 물리적이고 강압적인 능력을 의미하며, 기반 권력은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국가 제도의 합법성 및 효율성과 관련이 있다(Thomas 1987). 약소국은 이 두 가지 권력 중 하나 혹은 둘 모두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으며, 특히 약소국일수록 약한 기반 권력으로 인해 전제적 권력에 더욱 의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부잔(Barry Buzan) 역시 국가의 세 가지 필수 구성요소로 물리적 기반, 제도적 역량, 그리고 국가 관념을 꼽는데, 이 중에서도 특히 국가 관념의 요소에 주목한 그는 국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만 국가가 성립될 수 있으며,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유지할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국가를 약소국으로 구분한다(Buzan 1991). 한편, 국가권력을 연구한 또 다른 학자는 국가권력을 지도자의 필요와 의도에 따라 국민을 동원하고 통제하는 능력으로 정의하면서도, 국가 내 사회가 그러한 지도자의 권위와 권력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문제 역시 국가권력을 측정하는 데 중요하다고 말한다(Migdal 1998). 더 나아가 약소국일수록 국가 대 사회 간 대립이 강하게 나타나며, 그러한 국가 대 사회 간 내부적 세력균형이 약소국이 서구적 주권국가 형태로 발전하는 것을 막는다고 주장한다.

한편, 아윱은 제3세계 국가의 안보적 취약도를 평가하기 위해 아잘(Edward Azar)과 문정인의 연구를 원용하고 있다. 제3세계 국가를 분석하는 데 국가안보의 세 가지 차원, 즉 위협(안보 환경), 하드웨어(국가 능력: capabilities) 그리고 소프트웨어(정당성, 통합, 정책역량)의 상호작용에 집중한 이들의 연구에서 아윱은 특히 안보 소프트웨어의 세 가지 구성요소인 국가의 정당성, 통합 그리고 정책역량이 제3세계 국가의 안보적 취약도를 측정함에 있어 중요한 변수라고 주장한다(Ayoob 1995: 11). 국가의 정당성, 통합 그리고 정책역량의 정도가 약할수록 국가의 안보적 취약도는 높아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국가안보의 하드웨어 차원에서 아무리 강력한 능력을 자랑하는 국가일지라도 정당성, 통합, 정책역량의 측면에서 매우 취약하다면 얼마든지 제3세계 국가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안보적 취약성을 측정하는 방법으로는 정확히 어떤 국가가 서발턴 국가로 분류될 수 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어느 정도로 취약한 안보를 가진 국가이어야만 제3세계의 서발턴 국가로 분류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아윱은 제3세계 국가들이 가지는 다음의 공통된 특징을 제시한다(Ayoob 1995: 15): (1) 제3세계 국가는 경제적·사회적 불평등과 인종적·지역적 갈등으로 인해 내부적 통합에 어려움을 겪는 국가이다. (2) 국경과 제도 그리고 통치 권력체의 무조건적인 합법성을 갖추지 못한 국가이다. (3) 내외부적 갈등과 물리적 충돌에 취약한 국가이다. (4) 기형적이고 의존적인 경제적·사회적 발전을 경험하고 있는 국가이다. (5) 국제안보 및 경제 문제에서 소외된 주변화된 국가이다. (6) 선진국, 국제기구, 초국적 기업 등 외부 행위자들의 침투에 취약한 국가이다. 이를 종합하면, 제3세계 혹은 서발턴 국가는 약하고(weak), 공격받기 쉬우며(vulnerable), 불안정한(insecure) 국가를 의미하며, 따라서 강력한 물리적·강제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라 할지라도 정권의 정당성과 내부적 통합에 지속적이고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면 안보적 취약상태에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다.

Ⅲ. 서발턴 국가로서의 인도네시아

1999년 동티모르 사태가 발생했던 시점에 인도네시아가 제3세계 국가 혹은 서발턴 국가였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1945년 국가수립 이후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의 기간에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내부적 위협의 사례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시점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인도네시아는 국가 정당성에 대한 끊임없는 내부적 도전에 직면해 왔는데, 특히 분리주의 세력의 무장반란(armed rebellion) 문제가 심각한 내부적 안보위협으로 존재해왔다. 동남아시아 지역 내 무장반란 문제를 연구한 탄(Andrew Tan)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1945년 독립을 선언한 이후로 높은 수준의 분리주의 반란을 지속해서 경험해왔는데, 이는 단순히 인도네시아만의 문제라기보다는 탈식민화를 경험한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내부적 위협이었다(Tan 2000). 탄은 동남아 지역 아세안(ASEAN) 국가들은 탈식민화된 개발도상국으로서 주로 국가와 민족이 서로 잘 들어맞지 않는 특징을 가지며, 실제로 이들 국가 중 대부분이 다문화적이고 다인종적인 성격을 가진 국가라는 점을 지적한다(Tan 2000: 6).

이렇듯 국가와 민족이 상호 일치하지 않은 현상, 즉 이전 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국가의 영토적·제도적 구조와 통치세력의 정당성이 국가 내 사회 전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는 극심한 분리주의와 내란 등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인도네시아내 다양한 민족적, 종교적, 지리적 사회집단이 인도네시아라는 국가 정체성과 중앙 정권에 대한 불만을 가져왔고, 그러한 사회적 불만은 줄곧 무장반란의 형태로 나타났다. 예로, 1948년부터 1962년까지 다룰 이슬람(Darul Islam, DI)이라는 반정부 무장단체가 인도네시아 자바(Java)와 아체(Aceh) 지역을 중심으로 이슬람교 국가건설운동을 위한 무장투쟁을 벌였고, 아체 지역에서는 1976년 또 한 번의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 인도네시아 정부가 무력 진압을 벌이면서 분리주의단체와 정부군 양쪽에서 수많이 사상자가 발생했다(Singh 2003: 6-11).

1990년대에 들어서는 다룰 이슬람에서 파생된 제마 이슬라미야(Jemmah Islamiyah, JI)라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전역에서 활동을 시작하였고, 인도네시아 국가 붕괴를 목적으로 하는 폭탄 테러를 빈번히 자행했다(Singh 2003: 27-28). 다룰 이슬람이 민족적, 지리적, 종교적 차원에서 인도네시아 국가와 정권에 도전했다면, 제마 이슬라미야의 경우에는 좀 더 뚜렷하게 종교적인 목적하에 인도네시아 국가 붕괴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1999년 자카르타 폭발 테러, 2000년 주인도네시아 필리핀 대사관 테러, 2000년 인도네시아 11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크리스마스이브 폭발 테러, 그리고 2002년 발리 폭발 테러 모두 제마 이슬라미야의 소행으로 알려져 있다(Singh 2003: 37; Solahudin and McRae 2013: 184-191).

1976년에는 인도네시아로부터 아체 지역의 독립을 추구하는 아체메르데카(Gerakan Aceh Merdeka, GAM)라는 분리주의 무장단체가 생겨나 2000년대 초반까지 인도네시아 정부군과 치열한 무력충돌을 이어왔다. 자유아체운동(Free Aceh Movement)이라고도 알려진 이 분리주의세력과 인도네시아 정부간 갈등으로 인해 1976년부터 2005년 사이 아체 지역에서 15,000여 명이 사망하였으며, 양자 간 수차례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음에도 역내 불안정은 최근까지도 이어져 왔다. 아체 지역에서의 분리주의는 당시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정권이 추진한 신질서 체제의 주요 정책이었던 인도네시아의 문화적 통합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아체 지역 주민 대부분은 수하르토 정권을 이슬람 문화와 아체인에 매우 차별적인 정권으로 인식하였다(Drexler 2008: 67-70). 또한, 이들은 아체 지역이 인도네시아의 지배하에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되고 차별당하고 있다 느껴왔는데, 실제로 인도네시아의 경제적 발전과 상관없이 아체 지역은 오랫동안 인도네시아 내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 중 하나로 남아있었다(Singh 2003: 9; Tan 2000: 109).

자유파푸아운동(Free Papua Movement 혹은 Organisasi Papua Merdeka) 역시 눈여겨볼 사례이다. 인도네시아는 앞서 언급한 아체 지역 그리고 이 글이 주목하는 동티모르와 더불어 서부 뉴기니(West New Guinea) 지역에서도 극심한 분리주의적 저항에 시달려왔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직후에 서부 뉴기니 지역을 자국 영토로 선포하고 이를 이리얀자야(Irian Jaya)로 명명하고 통치해왔는데, 이 지역은 과거부터 멜라네시아(Melanesia) 고유의 민족주의가 강하게 존재했던 곳이었다(Tan 2000: 64). 따라서 인도네시아의 통치에 반발하는 세력이 지속해서 존재해왔으며 1963년 뉴욕 조약(New York Agreement)에 따라 인도네시아가 정식으로 이 지역에 대한 시정권을 갖게 되자 민족주의에 기초한 분리주의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1965년에는 자유파푸아운동이 결성되어 인도네시아 정부를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치기 시작하였고, 1969년에는 대규모 반란이 발생해 인도네시아 정부군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천 명에 달하는 서부 뉴기니 멜라네시아인들이 사망했다.

서부 뉴기니 지역의 멜라네시아 민족주의를 자극한 것은 무엇보다 수하르토 정권의 이슬람교도 이주정책이었는데, 수하르토 정권은 서부 뉴기니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슬람교도 인구를 이 지역에 의도적으로 이주시켰다. 그 결과 이 지역 멜라네시아인의 수가 이주민보다 적어지는 현상이 발생하였고 멜라네시아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Tan 2000: 64-65). 이러한 불안감은 특정 사회집단이 급격한 이주민의 유입으로 인해 수적 열세를 경험하게 되면서 자신들 고유의 집단 정체성(collective identity)이 와해된다고 느낄 때 발생하는데(Buzan, Wæver and de Wilde 1998: 121), 서부 뉴기니에서도 이와 같은 집단적 불안감이 분리주의 무장운동으로 이어져 되레 인도네시아 정부를 불안 딜레마에 빠트렸다.

이렇듯 인도네시아 내 여러 지역에서 발생한 분리주의운동과 반란은 모두 인도네시아 중앙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분개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이는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닌 해당 지역의 완전한 독립이나 인도네시아라는 국가 자체의 붕괴를 추구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인도네시아 중앙정부에게 심각한 내부적 안보위협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Sukma 2011: 4-5). 다시 말해 인도네시아의 영토, 제도 그리고 통치세력의 정당성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내부적 안보위협이 국가가 독립을 이룬 시점부터 생겨나기 시작해 1999년 동티모르 사태가 터진 시점에도 인도네시아 전역에 걸쳐 상존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분리주의 무장반란이 발생한 모든 지역에서 인도네시아 정부가 일관적으로 매우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 대응했다는 점 역시 눈여겨봐야 한다. 인도네시아의 국가주도적 폭력을 다룬 연구들이 말하듯, 인도네시아 정부는 무장분리주의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군대와 경찰력을 동원하였고, 그 결과 수많은 사상자와 난민이 발생했다(McDonald 외 2002; Davies 2006; Hedman 2005). 이러한 사실은 인도네시아가 매우 낮은 수준의 기반 권력을 가짐에 따라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 있어 물리적이고 강압적인 능력, 즉 전제적 권력에 의존해있었다는 점을 증명한다. 만약 인도네시아의 국가 제도의 합법성과 효율성이 높았다면 국가와 정부 권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 군대와 경찰력을 동원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동티모르 사태가 발생한 1990년대 말 인도네시아는 아윱이 제시하는 제3세계 국가의 여섯 가지 특성 중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특성을 갖춘 서발턴 국가였다고 판단해볼 수 있다. 즉, 당시 인도네시아는 경제적·사회적 불평등과 인종적·지역적 갈등으로 인해 내부적 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국경과 제도 그리고 통치 권력체의 무조건적인 합법성을 갖추지 못하였으며, 내외부적 갈등과 물리적 충돌에 취약한 국가임과 동시에 기형적이고 의존적인 경제적·사회적 발전을 경험하고 있었다. 비록 당시 인도네시아가 강력한 물리적·강제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였다 할지라도 중앙 정권의 정당성과 내부적 통합에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의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에 안보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본 연구에서는 인도네시아를 제3세계 국가, 즉 서발턴의 하나로 규정한다.

Ⅳ. 동티모르 문제와 인도네시아

그렇다면 서발턴 국가인 인도네시아에게 1999년 동티모르 사태는 어떤 의미의 사건이었을까? 인도네시아의 이해관계가 단순히 지정학적 차원에만 국한된 것이었을까? 동티모르 사태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인식과 이해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티모르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전반적인 이해관계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동티모르 문제는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합병한 1975년부터 사태가 발생한 1999년까지 인도네시아 정부에게 가장 중대한 내부적 위협으로 인식되어왔는데, 이는 단순히 동티모르에서의 분리주의가 아체나 자바같은 다른 지역에서보다 더 강하게 나타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합병 직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 동안 인도네시아 정부군이 동티모르의 분리주의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십만 명의 동티모르인을 사살했다는 사실 하나만을 보더라도 이 지역에서의 분리주의가 얼마나 극심하였는가를 짐작해볼 수는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에게 동티모르는 좀 더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더욱 중요한 문제로 여겨져 왔다. 첫째, 이념적 이유를 들 수 있다. 1974년 포르투갈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동티모르는 탈식민화라는 급격한 정치적 변동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동티모르의 완전하고 신속한 독립을 추구하는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Revolutionary Front for an Independant East Timor 또는 Fretilin)이라는 조직이 결성되었다.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은 급진주의적 좌파 성향의 조직이었으며 포르투갈과 아프리카 내 좌파세력과도 연계되어 있었다(Tan 2000: 53-54).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러한 급진주의적 좌파세력이 동티모르에 정권을 수립할 경우 인도네시아의 안보가 공산주의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였고, 그러한 이유로 무력을 동원해 동티모르를 강제합병하게 되었다(Tan 2000: 54).

1975년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이 동티모르 수도 딜리(Dili)를 점령하고 사실상의 독립을 선언하자 수하르토 정부는 바로 무력을 동원한 강제합병을 전개했다. 동티모르동립혁명전선이 동티모르를 공산화할 의도와 역량을 가지고 있었는가의 문제는 이 연구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당시 수하르토 정권이 동티모르에서의 분리주의운동을 공산주의와 같은 차원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수하르토 정권은 동티모르에 독립된 급진주의적 좌파정권이 세워질 경우, 인도네시아에서 분리되길 희망하는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 믿었다. 따라서 동티모르의 독립 문제는 공산화만큼이나 국가 통합과 통치권력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문제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수하르토 집권 시기 반공주의(anti-communism)적 이념이 가진 국내정치적 의미 역시 중요하다. 1965년 탄생한 수하르토의 신질서 정부는 권력을 장악해가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내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단행하였는데, 이는 수하르토 정권 이전 정부인 수카르노(Sukarno) 정권이 인도네시아 공산당(Partai Komunis Indonesia, PKI)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Robinson 2018). 수카르노 정권을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제거가 불가피했다. 1965년 9월 인도네시아 내 공산주의 조직이 인도네시아 군부 장성 여섯 명을 암살한 사건을 계기로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제거가 시작되었고, 1965-66년 인도네시아 대학살로 잘 알려진 이 시기 동안 적게는 50만, 많게는 3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Robinson 2018; Melvin 2017).

따라서 공산주의 위협을 제거한다는 명분은 수하르토 정권이 정치적 반대세력을 억압하고 중앙 정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줄곧 사용되었다. 1966년 이후로 사실상 인도네시아에서 공산주의가 중앙정부의 권위에 큰 위협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하르토 정권이 집권기간 동안 계속해서 공산주의를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강조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수하르토 정권은 정권의 내부적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돌리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억압하는 데 필요한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해 공산주의를 국가안보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내세웠다(Tan 2000: 90). 즉, 국가의 정당성과 국내질서의 확립을 위해 공산주의 위협을 의도적으로 안보화(securitisation)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1965-66년 공산주의 척결 작업이 있은 지 고작 9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그리고 수하르토 정권이 국가형성 과정에 반공(anti-communism)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해오던 시점에서 전개된 동티모르 강제합병과 동티모르의 분리주의적 저항은 동티모르 문제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인식이 형성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인식은 1998년 수하르토가 사임한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어 1999년 동티모르 사태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이해관계 형성에 그대로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에도 인도네시아 엘리트들은 동티모르의 독립이 곧 인도네시아의 국가분열을 의미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Schwarz 1994: 228).

마지막으로 동티모르 사태가 인도네시아에게 가장 위협적인 사건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외부의 관심과 개입에서 찾을 수 있다. 동티모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1975년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강제합병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수하르토 정권은 동티모르에 군대를 파병해 내부 질서를 안정시킨다는 명목하에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 세력을 무력진압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무력진압 직후 인도네시아는 곧바로 동티모르 내 친(親)인도네시아 세력인 티모르국민민주협회(Apodeti)를 통해 신속하게 합병을 진행해 마무리 지었다(Tan 2000: 54). 인도네시아의 이러한 독단적 행동은 바로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난을 초래했는데, 유엔은 동티모르인의 자기 결정권과 독립의 보장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표하고 인도네시아의 무력 사용을 규탄하는 한편 인도네시아 군대의 철수를 요구했다(Leifer 1995: 254). 유엔은 동티모르 문제와 관련하여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 지도자들을 옵저버(observer)로 참여시키기도 하였다. 이웃 국가인 싱가포르 역시 인도네시아의 행위가 아세안의 통합을 위태롭게 한다며 규탄했다.

동티모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개입은 1991년 산타크루즈(Santa Cruz) 지역에서 인도네시아 군대가 강제합병을 반대하는 동티모르 시위대에 총을 발포해 2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더욱 증폭되었다(Far Eastern Economic Review 1994: 28). 이번에는 유엔의 규탄과 함께 서구권 인권단체와 언론이 인도네시아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물론 수하르토 정부는 이러한 비난에 대응해 서구권 언론이 의도적으로 동티모르에 대한 선정적인 뉴스 기사(sensational new stories)를 쏟아내고 있다며 응수하는 한편, 인권단체들이 동남아 주요 도시에서 동티모르 문제로 회의나 강연을 열지 못하도록 아세안 국가 정상들에 압력을 가하기도 하였다(Tan 2000: 56-57).

동티모르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지속되고 유럽, 호주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동티모르인에 대한 동정여론이 커지자 1994년 인도네시아 정부는 마지못해 동티모르 저항세력과 타협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그해 10월 알리 알라타스(Ali Alatas) 당시 인도네시아 외무장관은 뉴욕에서 동티모르 저항세력 지도자들과 만나 인도네시아 정부가 동티모르 문제와 관련하여 대화할 의지가 있음을 전달하였고, 과거 인도네시아 군대의 시위 진압에 문제가 있었음을 부분적으로 시인하기도 하였다. 또한, 유엔평화유지군 경험이 있는 군인들을 동티모르에 파견함으로써 인도네시아 군대와 동티모르인들 간의 갈등을 완화하려는 시도 역시 벌였다(Far Eastern Economic Review 1994: 28). 그러나 여전히 인도네시아 정부는 동티모르의 독립은 결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점과 더불어 현재보다 더 확대된 자치권이 동티모르에 부여되진 않을 것을 분명히 하였다(Far Eastern Economic Review 1994: 28). 또한, 동티모르에 잔류해 있는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 게릴라 세력에 대한 무력진압 역시 그대로 지속하였다.

1998년 수하르토 정권의 오랜 집권이 막을 내리고 하비비(Bacharuddin Jusuf Habibie) 정권이 들어섰지만, 동티모르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인식과 이해관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하비비 정권하에 인도네시아 군부는 동티모르 내 친 인도네시아계 민병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여 이들을 이용해 저항세력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는 한편 동티모르 부락민에 대한 강제적 세뇌 교육을 추진하기도 하였다(Tan 2000: 59). 친인도네시아계 민병대의 난동은 1999년 9월 4일 동티모르의 독립투표 결과가 발표되면서 더욱 과격해지기 시작하였는데, 동티모르 주민의 79%가 독립에 찬성한다는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인도네시아 군부의 지원을 받은 민병대는 본격적으로 살인, 방화 및 약탈을 자행했다(Soares 2003: 53). 이때 동티모르의 사회경제 인프라의 약 70%가 파괴되었고, 독립을 지지하는 다수의 동티모르인이 민병대에 의해 살해되었다. 동티모르 수도 딜리에서 동티모르의 독립을 준비하던 유엔 역시 9월 10일 그곳을 긴급히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시작된 동티모르 유혈사태는 인도네시아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압박을 극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먼저 국제기구와 다자협력체로부터의 거센 압박이 본격화되었다. 유엔인권위원회는 공개적으로 인도네시아 군부를 동티모르 유혈사태의 가해자로 지목하는 한편, 인권유린범죄와 연루된 이들을 색출해 처벌할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밝혔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은 동티모르 사태를 이유로 인도네시아와 경제적 원조에 대한 논의를 잠정적으로 연기했다(Tan 2000: 60). 9월 9일 뉴질랜드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동티모르 사태는 주요 의제로 다뤄졌는데, 특별히 이 회의에는 동티모르 저항세력의 지도자가 직접 참석하여 국제사회가 평화유지군을 파병해 인도네시아의 대량살상을 막아줄 것을 호소하기도 하였다(CNN 1999). 인도네시아와의 관계악화를 우려한 아세안 국가들은 하비비 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삼가면서도, 유혈사태에 대한 우려를 표함과 동시에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 독립투표 결과에 수긍할 것을 촉구하였다.

국제사회의 이러한 관심은 동티모르 사태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 개입으로 이어졌고, 1999년 9월 20일 유엔의 승인과 미국의 지지하에 호주가 주도하는 동티모르 다국적군(INTERFET)이 공식 파병되었다. 다국적군의 개입이 이루어지자 동티모르 내 인도네시아 군부는 다국적군과의 마찰을 피하려고 빠르게 군대를 철수시켰고, 그해 10월 19일 하비비 정부는 동티모르 독립투표 결과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박지은 2015).

동티모르 다국적군 파병과 그로 인한 동티모르 독립은 당시 인도네시아가 얼마나 외부적 개입에 취약한 국가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아윱이 제시하는 제3세계 국가의 여섯 번째 특징, 즉 외부 행위자들의 침투에 취약한 서발턴 국가의 특징이 발견되는 대목이다. 동티모르 사태 발생 시점에 인도네시아는 동남아 지역 내에서 비교적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였으며 또 아세안 회원국이었지만, 정작 동티모르 문제에 대한 외부적 개입을 차단하는 데는 그렇다 할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동티모르 다국적군에 대한 아세안 회원국들의 참여는 당시 인도네시아가 얼마나 불안한 상태에 놓여있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동티모르 사태 전후 시기에 인도네시아는 국가의 정당성과 통합을 강조하던 수하르토 정권의 몰락, 심각한 경제난, 열도 전반에 걸친 분리주의적 저항, 그리고 동티모르에서의 후퇴로 인해 내외부적으로 상당히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아세안 내에서의 영향력 감소로 이어졌다(Tan 2000: 62).

따라서 인도네시아의 입장에서 동티모르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다국적군의 개입은 외부로부터의 침략과 다를 바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네시아의 국가 정당성과 통합 그리고 정권안보를 위해 동티모르에 대한 지속적인 지배와 통치가 절실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동티모르 사태의 발생과 다국적군의 개입 그리고 동티모르의 완전한 독립은 오랫동안 국가형성에 어려움을 겪어온 인도네시아에게 치명적 위기를 안겨주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Ⅴ. 맺음말

동티모르 사태가 발발한 시기에 인도네시아는 서발턴 국가의 특징을 지닌 제3세계 국가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탈식민화 과정에서 발생한 경제적·사회적·인종적·지역적 불평등과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열도 전역에 걸쳐 심각한 분리주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고, 그에 따라 내부적 통합을 이루어내지 못한 상태였다. 국경과 제도 그리고 국가 정당성은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었으며, 심각한 경제난과 더불어 수하르토 정권의 퇴진으로 인한 국내정치적 혼란은 당시 인도네시아를 더욱 불안정한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동티모르에 대한 다국적군 개입과 동티모르의 독립은 내부적으로 이미 취약한 인도네시아를 외부적으로도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동티모르 사태 전후 시기 동티모르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이해관계를 단순히 영토 확장의 과욕이나 영토 손실에 대한 우려로 보는 시각은 정황상 옳지 않다. 내부적 안보문제로 인해 영토적·제도적 구조와 통치권력의 정당성에 위협을 받는 제3세계 국가가 영토 확장에 대한 이해관계를 갖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영토 손실에 대한 우려를 가질 수는 있지만, 이 역시 지정학적(지전략적 또는 지경학적) 손실에 대한 우려가 아닌 국가 분열에 대한 우려로 이해되어야 한다. 제3세계의 안보적 곤경(security predicament)에 처한 인도네시아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완전한 국가형성, 즉 국가의 영토적·제도적 구조의 확립과 내부적 통합 그리고 중앙 권력의 안정화였지 영토 확장에 대한 과욕이나 미련은 아니었다.

이 점에서 1999년 동티모르 사태를 분석함에 있어 인도네시아를 처음부터 가해자로 지정하고 사건을 해석하는 시도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이해관계를 단순히 지정학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는 동티모르 사태의 전체적인 배경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 따라서 당시 인도네시아의 안보 현실과 그 속에서 형성된 위협인식 및 이해관계를 조명하는 시도가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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