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7/11/2014

지난달 박근혜 정부는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전환을 사실상 무기한 연장시켰다. 전작권 환수 연기 결정에 대한 비난 여론은 주로 크게 둘로 나뉘는 듯하다. 하나는 국가의 군사주권 포기에 대한 외교적 수치와 외교적 영향력 감소에 대한 우려이고, 다른 하나는 한중 관계 악화에 대한 우려다. 필자는 이번 전작권 환수 연기 결정이 특히 이 두 번째, 한중 관계에 있어 악수(惡手)였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작권 전환 연기 결정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국이 적어도 전략적 측면에서는 미국의 편에 섰음을 명확히 하는 선택이었으며, 이 결정이 단순 악수인가 아니면 결정적 패착이 될 것인가는 아직 단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현재 한중 관계를 고려할 때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중국의 경제 성장은 흔들림 없이 지속되고 있다. 혹자는 중국의 사회주의 정치 체제가 중국의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 주장하며 중국의 지속적인 부상 가능성을 부인하기도 하지만, 성장을 위한 변화에는 그 어느 나라보다 더 과감한 오늘날의 중국을 볼 때 이러한 주장은 별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중국의 경제 성장은 군사력 증강을 의미한다. 국가의 경제적 성장이 군사적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무정부적 국제 체제가 갖는 불변의 법칙이다. 중국의 경제 성장과 그로인한 군사력 증강은 이미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러한 중국의 급격한 부상에 미국이 상당한 부담감과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와 최근 일본의 재군사화 동향이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 불안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미국의 대중 견제와 고립 정책으로 이미 동북아시아 지역의 안보 환경은 매우 불안정하다. 전쟁을 생각할 단계는 아니지만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이 날로 심해져가고 있기에 전쟁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이렇듯 불안정한 역내 안보 환경 그 한 가운데 한국이 있다.

한국의 이번 전작권 환수 연기 결정에 대한 국민 다수의 우려는 너무나 당연하다. 중국의 눈에는 한국의 이러한 결정이 미국의 대중 견제정책의 한 부분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한중 관계에 손실을 가할 수 있음을 걱정하는 것이다. 결국 중국과 미국을 사이에 두고 갈등해야 하는 한국의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우려라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고래 싸움에 등 터질 걱정을 하고 있는 국가가 어디 한국뿐일까. 조금 밑으로 내려다보면 한국과 비슷한 위치에서 갈등하는 나라가 하나 더 있다. 호주(Australia)다. 물론 現 토니 애봇(Tony Abbott) 호주 총리의 친미 성향과 그 성향에 기초한 외교적 결정들을 보면 미-호 동맹에 대한 호주의 집착만 보일 뿐, 미국과 중국을 사이에 두고 고민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여전히 변화하는 아태지역 안보 질서 속에서 미국과 중국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는 방법에 대한 논쟁과 연구는 호주 정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 시점에서 호주가 기존 지역 패권국인 미국과 그 패권을 위협하는 중국의 군사적 경쟁에 휘말리지 않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최근 학계에서 가장 진지하게 다뤄지는 대안은 크게 세 가지인 듯하다. 첫째,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일본이 이끄는 대중 견제정책에 적극 참여하는 것 – 토니 애벗 정부의 선택과 가장 가깝다. 둘째, 미국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다자 동맹을 맺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럽의 스위스나 스웨덴처럼 ‘무장 중립 국가’의 길을 가는 것이다.

여기서 세 번째, 호주의 무장 중립 대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호주가 무장중립을 선택한다면 가장 먼저 자립적 국방을 갖춘 나라가 되어야한다. 이것은 즉 미-호 동맹의 파기를 의미하며 호주는 그 어떤 다른 국가와 군사적 동맹을 갖지 않게 된다. 현재 다윈(Darwin)에 위치한 미군기지 역시 문을 닫게 되며 호주 대륙에 타국의 군사기지 설립 역시 이뤄질 수 없다. 물론 미사일 방어 시스템 역시 배치될 수 없다. 호주 땅에 허락되는 호주군 외의 군대는 유엔 평화군이 유일할 것이다.

중립국으로서 호주는 그 어떠한 전쟁에 참여하지 않게 되며 전쟁 발발 시 그 어느 교전국에게도 군사적 지원 역시 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호주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상황에서 타 국가에 의해 침략을 당할 시 호주는 다른 나라에게 군사적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다만, 자동 개입의 원칙을 갖는 군사 동맹과 달리 중립국에 대한 군사적 지원은 지원국의 결정에 달려있기 때문에 지원 요청이 호주 방어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 역시 있다. 중립국 지위는 국제법으로 인정받는 것이지만, 무정부 국제 사회에서 국제법만으로는 국가의 생존과 안보를 보장받을 수 없다. 즉, 호주가 국제 사회로부터 무장중립 지위를 인정받는다고 하더라도 호주에 대한 외세 침략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따라서 무장중립을 선택할 시, 호주는 그 어떤 군사 동맹 없이 자국의 국방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며, 이것은 다시 말해 자립형 국방에 적합한 군사력을 필요로 한다. 호주 영토와 영해에 대한 여느 외세, 심지어 강대국의 침략을 억제할 만큼 강력한 군사력을 갖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호주에 대한 침략의 득이 실보다 절대 클 수 없음을 타 국가들에게 인식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군사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호주의 적은 인구를 감안할 때 호주 정규군을 단기간 내에 대폭 늘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처럼 인구가 많은 국가의 경우 징병제를 통해 정규군을 늘려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이 가능한 반면, 인구가 적은 호주의 경우에는 징병제를 통한 군사력 증강 자체가 비효율적이며 애초에 광활한 호주 대륙을 지상군을 통해 방어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따라서 비교적 작은 규모에 기동성이 매우 높은 정규군과 의용군으로 이뤄진 군대가 호주에게 더 적합하다.

물론, 강력한 지상군만으로는 무장 중립을 위한 충분한 군사력을 갖췄다고 말할 수 없다. 해군력과 공군력 역시 대폭 강화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더 이상 미국의 해공군력에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호주 해공군력의 자체적 증강이 불가피하다. 또한 현대전쟁은 정보력에 의해 그 승패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과의 동맹 파기로 더 이상 미국의 정보력에 의존할 수 없는 호주는 정보력 역시 대폭 강화해야한다.

호주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무장 중립은 꽤나 효율적인 국방 정책이라 볼 수 있다. 아시아 본토를 포함한 타 대륙과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위치한 호주 대륙은 실제로 유럽의 스웨덴이나 스위스보다 더 강한 지정학적 강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호주 대륙이 여타 대륙과 차별되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도 방어에 한층 도움이 된다. 더불어, 호주 북쪽에 자리한 거대한 인도네시아 열도는 혹 있을지 모를 아시아 대륙에서의 남진형 침략으로부터 호주 본토를 막아주는 방파제와 같다. 여기에 호주 대륙은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강대국마저도 침략을 통한 완전 정복에 큰 부담을 느낄 만큼 광활하기에 호주 침략에 대한 메리트를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 물론 핵시대에 영토의 크기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핵무기는 공격적 성격보다는 억제적, 다시 말해 방어적 성격이 더 강한 무기이며, 무장 중립국인 호주가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 이상 타 핵보유국이 호주에 대한 핵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은 적다.

그렇다면 무장 중립의 장점은 무엇일까?
분명 가장 큰 장점은 혹 있을지 모를 미국과 중국의 전쟁 혹은 일본과 중국의 전쟁에 호주가 참전해야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호주가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유지하는 한 미국이 참여하는 전쟁에 호주정부가 참전 거부를 선언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1951년 ANZUS 동맹이 수립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미국과의 군사 동맹으로 인해 호주는 베트남전, 걸프전, 이라크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전과 같은 미국을 위한 전쟁에 충실히 참여해왔다. 이러한 과거는 호주가 미국의 동맹국으로 남는 한 미래에 있을지 모르는 아태지역 내 미국 또는 미국의 동맹국이 참여하는 전쟁에 무조건 참여해야 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아직까지는 중국과 미국이 군사적 경쟁의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이러한 대립과 경쟁이 점점 더 악화될 경우, 대만이나 북한 혹은 중일간 영토 분쟁과 같은 안보 도화선이 미중 전쟁으로 충분히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호주는 미국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무장 중립국의 길을 걸음으로 이러한 참전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미-호 동맹이 파기된다면 다윈에 위치한 미군 군사기지가 해체되기 때문에 호주 영토가 아태지역 전쟁 발발 시 미군 기지에 대한 – 예를 들어 중국의 – 미사일 공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무장 중립 정책에는 두 가지 커다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무장 중립은 비싸고 어려운 국방 정책이다. 특히 지금까지 미국의 덕으로 강력한 군사력 없이도 국가 안보를 지킬 수 있었던 호주에게 무장 중립은 더욱 비싸고 어려운 정책이 될 것이다. 앞에서 여러 번 말한 바와 같이, 무장 중립은 모든 동맹의 파기를 의미한다. 호주가 무장 중립국이 되는 순간, 미-호 동맹 역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즉, 자립형 국방력을 갖춰야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립형 국방력이란, 강대국마저도 호주 침략의 대가에 부담을 느낄 만큼 호주 군사력이 강력해야함을 뜻한다. 하지만, 간단히 말해 호주는 대규모 군대를 형성할만한 능력이 없다. 정규군대를 대폭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높은 임금을 약속한 자발적 군복무를 유도한다고 하더라도 적은 인구의 한계로 인해 의용군 규모 확대 역시 기대하기 힘들다. 따라서 호주가 독립적으로 효과적인 ‘재래식 억제력’을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방비를 대폭 늘려 재래식 무기 개발과 구입 그리고 정보력 강화를 이루는 것뿐이다. 최근까지 아태 지역 안보 질서가 미국의 패권 아래 있었기 때문에 호주 국방은 미-호 동맹 하나만으로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지난 60년 동안의 미국 중심의 지역 안보 체제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적 지원 없이 효과적인 재래식 억제력을 키우는 것에는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수반될 것이다.

두 번째, 무장 중립을 위한 호주의 군사력 강화는 호주와 인도네시아 간의 군비 경쟁을 일으킬 수 있다. 무정부 국제 체제에서는 특정 국가의 군사력 강화가 다른 국가, 특히 지정학적으로 인접한 국가의 안보를 위협한다. 서로가 서로의 의도를 끊임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 무정부 체제 속에서는 방어적 성격만을 지닌 중립국의 군사력 강화 역시 안보 위협으로 인식 될 가능성이 있다. 호주와 인도네시아 사이의 밀접한 지정학적 거리와 두 국가 간의 문화적 차이 그리고 외교적 갈등은 이러한 구조적 현실주의 이론에 가능성을 더한다. 따라서 무장 중립을 위한 호주의 군사력 강화가 인도네시아에게는 자국 안보와 역내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인도네시아 역시 호주의 군사적 성장에 맞춰 자국 군사력 강화에 더욱 집착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남태평양 지역의 유일한 중간국인 호주와 인도네시아 간의 전략적 군비 경쟁이 일어날 수 있으며 결국 호주는 갈수록 늘어가는 국방비에 큰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무장 중립은 분명 호주의 자립적 국방력을 강화하고 미국 주도의 전쟁에 참여해야하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고려해볼만한 국방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장 중립에 따른 국방비 증가를 과연 호주 정부가 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아직 명확한 답을 제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시아 세기에 호주 안보를 더욱 견고히 할 방법으로 기존의 미국과의 동맹에만 집착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중국의 군사적 성장과 그에 따른 미중간 군사 경쟁과 대립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미 변화하고 있는 아태지역 안보 환경 속에서 지난 60년 동안 호주의 국방을 책임져준 미-호 동맹의 실효성은 점점 더 떨어질 것이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호주 정부는 국방 정책 수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필요가 있다.

호주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한국 역시 마냥 한미동맹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미중간 전략적 갈등이 갈수록 깊어지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은 그 실효성만큼이나 위험성 역시 높은 방위책일 수 있다. 안보 극대화를 위한 한 국가의 정책 고민은 정당한 주권 행사이기에 대안적 국방정책에 대한 고민과 논쟁은 지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