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ca Barnack II (model D)


라이카 바르낙 IId를 드디어 사용해볼 기회가 생겼다. 시리얼 번호나 가죽을 보니 가죽공방 JnK에서 스킨교체 작업 결과물로 소개되었던 물건인데, 이렇게 저렇게 돌고 돌아 인연이 닿았고, 결국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정확한 이름은 Leica II (model D)이며, 내가 가진 개체는 시리얼 번호상 원래 Leica I (model A)였던 것을 factory upgrade 한 것이다(국내 라이카 유저 커뮤니티에서 잘 알려진 바르낙 전문가 ‘Leica Sisyphus’라는 분의 게시글을 보고 알게 된 사실이다). 1928년도에 생산된 것이라니, 그 옛날 독일의 기술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이중상은 선명함을 다소 잃었지만 파인더는 깨끗하다. 여하튼 아흔다섯 살이나 잡수신 카메라로 보기 어렵다.

SN StartSN EndProductYear built
630113100Leica I1928
출처: http://wiki.l-camera-forum.com/leica-wiki.en/index.php/Serial_Numbers_Leica_Cameras

바르낙을 사랑하는 유저들의 평가가 대부분 그러하듯, 극도로 미니멀한 디자인에서 오는 아름다움은 이 오래된 카메라의 불편함과 단점을 잊게 한다. 바르낙 중에서도 특히 작은 크기를 가진 IId는 좌우 스트랩 고리마저 없다. 전면과 후면도 단순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손에 쥐었을 때 그립감이 좋다.

바르낙 IId를 사랑하는 이들은 대부분 블랙페인트나 에나멜 소재의 라이카 바디 예찬론자일 가능성이 크다. 나 역시 오리지널 블랙페인트 바디를 한번 써보고 싶어 에나멜 코팅된 IId를 구했는데, 오래된 오리지널 블랙 바디에서만 볼 수 있는 몽글몽글한 버블과 그게 벗겨지며 드러난 황동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높은 만족감을 선사한다. 라이카의 오리지널 블랙 바디를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게 바로 바르낙 IId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구한 개체는 상판 은사 각인도 잘 보존된 상태인데, 바르낙 초기형 바디에서만 발견되는 이 은사 각인이 또 바르낙 중독에 한몫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스킨 역시 JnK를 통해 작업한 천연가죽이라 그런지 비싼 만큼 굉장히 부드럽다.

본가에 내려가는 날 택배로 받게 되어 부랴부랴 소독과 세척 작업을 끝내고 반도카메라 렌즈 파우치에 넣어 가져왔다. 그렇다, 렌즈 파우치에 들어갈 만큼 작다. 대부분 바르낙과 마찬가지로 IId 역시 40mm 화각을 지원하는 파인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35mm 렌즈를 사용하더라도 별도의 외장 파인더가 필요하지 않은 장점이 있다. 그래서 급한 대로 캐논 세레나 35mm f/2.8을 바디캡 삼아 마운트해 가져왔는데, 그냥 두고 보기엔 예쁘다. 삼반 엘마나 니켈 엘마가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당장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아버지와 대문을 교체하기로 해 사진을 찍을 시간은 없겠지만 혹시 몰라 TMax 400도 한롤 챙겼다. 시간이 나면 우리집 강아지들이나 담아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