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Seongsu and Leica


더운 초여름 6월이 이렇게 반가웠던 적은 없다. 특별한 날이 껴있는 달도 아니지만, 그냥 테이블 캘린더를 한 장 넘김으로써 잔인했던 4월과 지겨웠던 5월에 정말 안녕을 고할 수 있어서 마냥 기뻤다. 그래서 5월의 마지막 날 서현과 성수동에 다녀왔다. 달이 바뀐다고 바쁜 일상이 한가로워지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마음만은 깃털처럼 가벼워서 더운 날씨 개의치 않고 다녀올 수 있었다.

Q3 런칭을 기념해 라이카가 성수동에서 진행한 팝업을 가보자 하고 나선 길이었는데, 정작 행사장엔 10분도 머물지 않았다. 애초에 돈값 못하는 Q 시리즈에 관심이 없기도 했고, 더 큰 이유는 팝업에 볼 게 없었다. 빨간 딱지 붙은 커피를 공짜로 제공해서 그런지 사람은 좀 몰렸지만, 내 눈엔 팝업도 Q3도 엉성하기만 했다. 세상에, 라이카에 틸트 디스플레이가 웬 말인가-

라이카 팝업은 별로였지만, 성수동의 나머지는 다 좋았다. M10에 삼반 주마론(Summaron 35mm f/3.5)을 물려 사진을 찍었는데, 다른 동네라 그런지 아니면 성수동이 소위 힙플레이스이기 때문인지 아무튼 오랜만에 사진이 재미있었다.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을 활용한 카페, 갤러리, 샵도 많고 군데군데 아직 자리를 지키고 앉은 중공업의 흔적도 적지 않아 구경하며 걷는 재미가 컸다. 서현이 찾아 들어간 작은 카페에서 이탈리아 아저씨가 타주는 커피도 맛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서울에서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다.

RF 카메라, 올드 렌즈, 컨트라스트를 높인 흑백모드로 담아낸 사진은 어딘가 정겨운 구석이 있다. M3나 바르낙 같은 필름바디를 사용했더라면 그 결과물은 더 드라마틱했겠지만, 거리스냅을 필름으로 담아낼 실력도 용기도 없기에 내 기준에선 만족스러운 출사였다. 실력도 없으면서 노출계가 없는 fully-mechanical 필름 카메라를 좋아하는 탓에 아직도 필름사진은 어렵기만 하다.

그래도 필름그레인의 아름다움과 버벅거림의 즐거움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이다음엔 필름바디를 챙겨갈까 고민이다. 35mm 화각 렌즈를 그것도 삼반 주마론 같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올드 렌즈를 M10에 물려 가져간 이유도 그 버벅거림의 즐거움 때문이다.

다만 성수동에서 잘만 가지고 논 주마론을 오늘 떠나보냈다. 애초에 소장용으로 보기 어려운 상태였고, 35mm가 어렵기도 했다. 그렇다고 또 전투용으로 굴리기엔 상태가 좋은 편이라 그냥 더 좋은 주인 만나길 바라며 이별을 고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책상 위엔 또 다른 삼반 주마론이 놓여있다. 라이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