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지고 있는 니콘 F 블랙 바디 중 하나를 여기저기 손봤다. 애초에 신동급이나 상점 기준으로 A+급 이상에 해당하는 개체만 들이기 때문에 수리를 위한 게 아니라면 웬만해선 카메라나 렌즈에 도구를 들이대는 일이 없지만, 이번에 손을 본 바디는 처음부터 실사용을 목적으로 데려왔던 녀석이라 용기 좀 내봤다.
페인트 마감을 벗겨내 황동을 드러내고 부품용 바디에서 필름 카운터와 마모된 나사 등을 떼어와 교체했다. 원래 리페인트되어 있던 삼각뿔 파인더는 그냥 전면부 페인트를 아예 벗겨냈다. 부품용 바디에 딸려 왔던 것인데 아마추어가 작업을 한 듯 페인트가 지나치게 두꺼웠고 무엇보다 ‘F’ 레터링 상태가 엉망이라 볼 때마다 거슬렸다. 파인더 내부로 들어간 오래된 스펀지 가루도 깨끗히 닦아내고, 뚜껑을 깐 김에 스펀지도 새걸로 교체했다. 마음 같아선 바디 상판도 걷어내 더 분해해보고 싶었지만 1971년에 태어나 여태껏 잘 견뎌온 귀한 카메라를 행여 망가뜨릴까 싶어 애써 참았다.
리페인팅 업체가 작업한 결과물엔 비할 바가 못되지만, 그래도 내 기준에선 나름 만족스럽게 잘 나왔다. ‘beaten-up vintage camera’ 느낌에 걸맞게 렌즈도 상처 많은 28mm f/3.5 해바라기 올드 렌즈를 마운트해봤다.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니콘 F 같은 완전기계식 필름 카메라는 기술이 없더라도 약간의 손재주만 있다면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는 게 어렵지 않다. 인터넷에 도는 수리기를 따라 연습을 좀 한다면 저속셔터 수리도 도전해 볼 만 하다. 물론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을 실수로 건드려 기계가 먹통이 될 위험도 있지만,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수리비를 요구하는 라이카도 아니니 그땐 전문가의 손을 빌리면 그만이다.
여하튼 손을 많이 탄 물건에는 그만큼 정도 더 가는 법이라더니- 당장 어제 서현과 산책을 나서는 길에 들고 나가 한롤을 태웠다. 카메라든 뭐든 물건은 우선 예뻐야 한번이라도 더 들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