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Gardening, 徽貞院


초겨울 집. 마당을 다 쓸고 나면 정갈하셨던 엄마 생각이 난다.

11월은 도저히 여유를 낼 수 없어 한달 간 발걸음을 하지 못했는데, 그간 집도 나무도 강아지도 벌써 겨울색을 입었다.

‘2022’라는 숫자가 여전히 어색한데 벌써 12월이다.

2022년은 ‘거리두기의 해’였다.
어지간한 모임에 발을 끊고 사적인 만남도 가능한한 피했다.
예의상 주고받던 연락도 주지 않고 받지도 않게 되었다.
가끔 저조한 컨디션 때문에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할 때면 오히려 그런 몸상태가 감사하기까지 했다.

그냥 만남이 좀 피곤했던 것 같다.
필요에 따라 억지로 소화하던 남의 시건방, 가식, 무염치가 질리고, 또 지척에 있는 의지할 대상에 실망하기를 반복하면서 그냥 많이 지쳤다.

대신 책상 앞에서 부족한 머리를 쥐어짜며 공부를 하거나 모아둔 카메라를 만지며 혼자 누릴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을 찾았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 넘치는 서울은 뭘하든 답답한 곳일 뿐이었다.

고향집에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법정의 글을 읽으며 한번 위로 받고, 집 정원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을 보내며 또 한번 위로 받았다.

재작년 분재로 있던 소나무를 노지로 옮겨 심으며 그 주변에 맥문동을 둘러 심었는데 빈틈없이 잘 자랐다.
바위틈에 심어도 잘 자라는 맥문동은 여름 내 숨어 살다가 겨울이 되면 그 귀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정원에서 요즘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녀석은 수년 간 부침하다 이제 단단히 뿌리 내린 주목이다.
언젠가 익산고모에게 몇 주 얻어다 심은 남천에 보기 좋은 열매가 맺혔다.
사진을 찍고 보니 중앙뜰 쌍갈래 소나무 수형이 바뀐 걸 알았다. 아버지와 나는 나무 수형과 전정에서 의견이 갈려 서로 피곤할 때가 종종 있다.
여름보다 겨울이 강아지들 지내기는 더 수월하다.
2년 전 손가락 굵기만한 백합나무 묘목 수십 주를 선물받아 좌측뜰 담을 따라 줄지어 심었는데 벌써 이렇게 자랐다. 내년 늦봄에 부지런히 솎아 내야겠다.
백합나무와 모란.
이 동백은 원래 약한 개체인 것인지 아니면 토양이 습한 것인지 발육상태가 다른 녀석들에 비해 좋지 못하다. 못난 정원사 때문에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포도같은 맥문동 열매. 주워다가 고른 흙 위에 그냥 던져두면 봄에 싹을 틔운다.
좌측뜰에 비자나무. 상황이 여의치 않아 너무 큰 나무를 제대로 분뜨지 않고 이식하는 바람에 수년째 힘겹게 뿌리내림을 하고 있다.
중앙뜰 소나무 전정시기를 놓쳐 겨울철 눈에 가지가 부러질까 걱정이다.
앞마당에 복동이.
복실이.
소나무는 활착률이 낮은 까다로운 수목인데다가 이식할 시기도 아니지만 자연적으로 발아한 어린 소나무가 너무 많아 부득이 스무 그루 정도 정원 여기저기 옮겨 심었다.
이식한 어린 나무 옆에 저렇게 막대기를 세워두면 부잡한 우리집 강아지들도 어지간해선 뭉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