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M3


결국 M3까지 왔다.

최근 필름값이 아까워 필름카메라들을 그냥 방에 모셔두고 라이카 디지털 CL 두 대를 나름 열심히 굴렸다. 하나는 엘마릿 18mm를, 다른 하나는 녹턴 45mm를 물려 산책하는 아내와 동행했다. 필름이 비싼 것도 이유이지만, CL이 공식적으로 단종되고 나니 애착 비슷한 게 더 생긴 것도 있다 (특히 CL 블랙바디는 이제 새제품으로 사고 싶어도 국내엔 재고가 없단다).

아무튼 그렇게 디지털카메라의 편리함에 좀 익숙해지고 나니, 필름카메라가 전보다 더 번거롭게 다가왔고, 그러던 차에 문득 눈 앞에 놓인 라이츠미놀타 CL과 수동렌즈 몇 개를 보내야겠다는 결심이 서 바로 충무로로 향했다.

학기말이라 잠을 잘 자지 못해 비몽사몽한 상태로 충무로 A상점에 들러 가져온 애들을 방출했다. 주로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나와 있을 때보다 새 주인을 만나면 더 자주 빛을 보겠지 싶어 아쉽지만 놓아 주었다.

라이츠미놀타 CL은 여러모로 보내기 아쉬운 바디다. 콤팩트해서 손에 감기는 맛이 좋고, 외형도 너무 고급스럽지 않아 들고 다니기에 부담이 적었다. 다만 다른 라이카 바디에서는 찾기 어려운 다소 저렴한 느낌과 한 쪽 면에만 달린 스트랩 고리 때문에 평생 같이 갈 물건은 아닌 듯했다 (물론 라이츠미놀타 CL과 TMax 400의 조합으로 나온 결과물을 보면 아직도 아쉬움에 속이 좀 쓰리다).

들고 간 라이츠미놀타 CL, 니콘 팬케이크 렌즈, 녹턴 35mm, 니콘 FM2를 쿨하게 보내버리고 미련없이 돌아서려 했으나, 충무로에 갈 때마다 눈에 밟히던 빌어먹을 M3와 눈이 딱 마주쳤다. 필름카메라엔 더는 마음 두지 않겠다던 다짐이 그냥 보기 좋게 무너졌다.

Leica M3
Leica M3

이미 M-A 신품을 가지고 있어 M3를 들일 필요는 전혀 없었지만, 내 짧은 경험에서 보자면 라이카 장비병엔 그런 식의 논리가 통하질 않는다. 실용성만을 두고 보면 M6와 MP가 동시에 필요하지 않고 M3와 M-A를 모두 거둘 이유도 없지만, 라이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라이카는 그냥 ‘다다익선’이다.

110만번대 후기형 시리얼 번호에 외관도 깨끗하고 오버홀도 되어 있어 많이 고민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장님이 믿을만한 분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데려왔다.

이제 적당한 50mm M마운트 렌즈를 하나 찾아봐야 하는데, 이 과정이 사실 가장 즐겁다. 짬이 날 때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고, 좋은 매물이 없나 남대문, 충무로, 회현지하상가를 기웃거릴 때가 재미있다. 막상 물건을 사고 나면 흥이 떨어진다.

가끔은 없는 시간 쪼개가며 카메라를 구경하러 돌아다니는 게 소갈머리 없어보일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지만, 그냥 많이 지치는 상황에 소소하게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구석이라 생각해서 너무 신경쓰지 않고 즐기기로 했다.

캔버라에 계시는 에이드리언 선생님 생각이 난다. 자신의 텃밭에서 키워낸 마늘, 당근, 감자를 보고 뿌듯해하시던 모습이나, 블랙베리로 직접 담근 와인을 나누며 마음껏 행복해하시던 모습이. 선생님은 열심히 살다가 어느 순간 밀려오는 허무함에 다치지 않으려면 인생 구석구석 소소하게 행복을 느낄만한 것들을 놓아두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다. 내 방식대로 그 방법을 조금씩 찾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