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백년국치의 트라우마로 인해 기술 분야에서의 뒤처짐에 그 어느 국가보다 민감하다. 중국이 미래 산업 육성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중국제조2025」와 「천인계획」 등은 그러한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기술발전 우선주의 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세대 정보기술, 로봇, 항공 우주, 해양 공학, 고속철도, 고효율·신에너지 차량, 친환경 전력, 농업 기기, 신소재, 바이오 등을 핵심 기술분야로 선정한 「중국제조2025」와 「천인계획」은 해당 분야에서의 우위 선점뿐만 아니라 이를 통한 군사력 증강을 목표로 하고 있어 미국을 비롯한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일례로 보수 성향의 호주 싱크탱크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가 2020년 8월 발간한 ‘Hunting the Phoenix’ 보고서는 중국이 천인계획을 통해 전세계 약 600개의 연구기관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러한 방대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술 우위를 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또한 「천인계획」이 투명성의 측면에서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면서, 연구비를 제공함으로써 호주를 포함한 주요 선진국들의 우수 과학자들을 ‘기술 도둑’으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호주 정부와 더불어 미국의 대중국 위협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호주 정부는 주정부나 대학이 연방정부의 허가 없이 중국 정부와의 연구 협약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법제를 마련하였고, 미국, 일본, 인도와 결성한 쿼드(Quad)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따돌리기 위한 ‘쿼드 기술 네트워크(Quad Tech Network)’를 결성하기도 하였다.

미국의 인식도 이와 같은데, 2018년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 내 거의 모든 중국 국적의 유학생들은 스파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것은 차치하더라도, 2019년 5월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 수출관리규정(Export Administration Regulation, EAR)을 개정하여 화웨이와 그 계열사 68개를 수출 블랙리스트라 할 수 있는 엔티티 리스트(Entity List)에 등재함으로써 자국 정부의 승인 없이는 자국 기업이 반도체를 비롯한 EAR 적용대상 품목을 화웨이에 수출하거나 제3국에서 자국 기업의 기술 및 소프트웨어가 일정 비율 이상 포함된 외국제품을 화웨이에 수출할 수 없도록 했다.

이렇듯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중국의 야심과 굴기가 미국과 주요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반중(反中)연대를 결성하는 데 빌미를 제공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호주를 대상으로 벌어진 일련의 중국발 사이버 공격은 이들 국가 간 관계 악화를 더욱 부추겼다. 거기에 더해 중국의 홍콩국가보안법 도입이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위협하는 행위로 비치면서 영국, 캐나다도 중국을 규탄하고 디지털 안보 분야에서 중국 밀어내기에 동참하게 되었다. 현재 중국과 자유민주주의 진영 간 관계는 사실상 대적 관계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은 여러모로 중국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후발주자로서 빠르게 추격의 격차를 좁혀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여전히 해외 제조사의 특정 부품 등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 놓여있다. 특히 반도체를 예로 들 수 있다. 중국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화웨이가 미국 주도의 반중연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남아 지역 등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자랑하고는 있지만, 인공지능, 5G 이동통신, 클라우드 컴퓨팅 등이 요구하는 높은 전산처리능력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해외 제조사, 특히 대만의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의 반도체 칩이 절실하다. 그런데 이미 TSMC 역시 미국의 직접적인 요구를 수용하여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하였다. TSMC는 화웨이가 생산하는 스마트폰 중앙처리장치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의 98%를 생산할 만큼 TSMC에 대한 화웨이의 의존도는 상당히 높았다. TSMC를 대처할 공급업체로 대만의 미디어텍이나 중국의 SMIC가 거론되기도 하였지만, 이들 기업과 TSMC 간 기술격차가 상당해 결국 화웨이는 고사양 스마트폰 생산을 전격적으로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이 디지털 기술 분야에서 계속해서 성장세를 유지하고, 궁극적으로 미국 주도의 압박에서 벗어날 방법은 자체적인 반도체 생산능력을 갖추거나 TSMC를 대처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해외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과 관련하여, 이미 화웨이는 상하이와 후베이성 우한연구개발센터 내에 반도체 생산기지를 구축하며 기술자립에 나섰다. 그러나 자체적인 반도체 생산이 수급 문제 해결을 빠른 기간 내에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반도체는 양산에 성공하는 문제를 넘어 수율(생산품 중 양품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데, 여전히 화웨이의 반도체 생산능력이 높지 않다는 게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물론 현재 중국 정부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화웨이 등에 막대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은 반도체 산업에서 부침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에 위협이 될 만큼의 생산능력을 갖출 수 있을 거라는 예측 역시 존재한다. 결국 중국이 양품의 반도체를 생산하는 능력을 갖추기 전까지 전 분야에 걸친 미국의 대중 봉쇄 압박을, 특히 디지털 기술 분야에서의 압박을 버텨낼 수 있을지, 또 국가 주도의 선제적인 투자를 지속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두 번째 방법인 해외 공급망을 확보하는 길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대만의 TSMC를 대처할 수 있을 만한 기업으로는 한국의 삼성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는데, 한국이 미국의 동료압력(peer-pressure)을 무시해가면서 삼성과 화웨이 간 거래를 용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화웨이에 대한 한국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닌 민간 차원의 문제’라는 것인데, 최근 파이브 아이즈 정보동맹에 대한 한국의 참여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 정부로서도 미국의 반중연대의 네트워크를 계속해서 모르쇠로 일관하며 중국과의 디지털 기술 분야 협력관계를 증진하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 이외의 협력 파트너를 모색하는 것 역시 가능하지만, 미중 경쟁이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 대립의 양상을 띠면서 디지털 기술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선진국들이 중국과의 협력관계 수립에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일대일로 등을 통해 중국과 발을 맞추고 있는 대부분의 친중 국가는 디지털 기술 분야에서 경쟁력이 그리 높지 않다.

디지털 기술을 포함한 첨단기술 분야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내기 위해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