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안보전략과 한일 관계 정상화 과제


최근 한일 관계는 감정에 휘둘리는 전개 양상을 보이며 쉽사리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의 대일 외교는 민족주의적 접근을 취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고, 일본 역시 스가 내각 출범 이후로도 한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미국이 중국의 세력팽창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글로벌-지역 차원의 연대와 동맹을 강화하는 전략을 추구하면서 한일 간 관계 회복을 요구하는 미국의 압박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언제나 그랬듯 한일 관계는 미국의 안보전략의 방향을 고려하여 결정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글로벌 차원에서 기술-민주주의 국가(techno-democratic state) 간 연대를 강화하고, 지역 차원에서는 인도-태평양 구상을 앞세워 역내 동지국가 내지는 유사입장국가 간 협력을 주도함으로써 중국을 봉쇄하고자 한다. 먼저, 기술-민주주의 국가 간 연대는 트럼프 행정부 시기 미국이 G7을 G10으로 확대한다는 구상과, 그러한 구상에 발맞춰 영국이 내놓은 D10이라는 민주주의 10개국 간 동맹 구상에 기반을 둔 것이다.

2018년 화웨이 사태로 인해 미중 간 5G 통신망 기술을 둘러싼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더 최근에 반도체를 중심으로 양국 간 기술패권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은 중국의 첨단기술 굴기를 차단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발전한 민주주의 국가 간 연대 모색에 나섰다. 그리고 그러한 연대의 확장에 인도, 호주, 한국의 참여가 요구되고 있다. 그중 인도와 호주는 이미 미국 주도의 안보협의체 쿼드(Quad)에 참여하고 있으며, 화웨이 사태 국면에서도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통신기업의 통신망 장비 사용을 전면 거부했을 만큼 큰 틀에서 미국과 발을 맞춰 나가고 있다. 또 다른 쿼드 국가인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반(反)화웨이를 선언하지 않았지만, NTT, KDDI, 소프트뱅크, 라쿠텐 등 일본 기업들이 이미 중국 통신기업 퇴출을 위한 미국의 클린 네트워크(Clean Network) 정책에 참여하고 있으며, 더욱 최근에는 파이브 아이즈 정보동맹에 대한 참여를 모색해오고 있다.

그에 반해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 화웨이 배제 결정을 유보하는 등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미중 양자택일의 압박을 회피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2020년 말 미국 의회가 화웨이의 5G 장비를 도입한 국가들에 미군과 미국의 전략무기 배치를 불허 또는 철회하는 조항을 마련하면서 화웨이 사태가 다시 한번 쟁점화되었을 때도 한국은 화웨이를 배제하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한국은 화웨이 문제가 민간 차원에서 다뤄질 문제라는 초기 입장을 그대로 유지해오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로도 미중 기술패권경쟁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어떤 측면에서는 우방국에 대한 미국의 반중 연대 압박이 이전보다 더 강해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제2의 화웨이 사태’나 데이터, 인공지능, 반도체 등을 둘러싼 미중 갈등국면이 전개될 경우 한국은 다시 한번 심각한 양자택일의 압박에 당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압박의 구체적인 내용에는 한일 관계 정상화 요구가 단연 포함될 수밖에 없다.

한편, 지역 차원에서도 역시 한국은 미국의 연대압박에 직면한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을 천명한 이후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줄곧 인도-태평양 지역 개념이나 미국의 관련 전략을 수사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거부해오다가, 2021년 2월 들어 “한미가 역내 평화 핵심 동맹임을 재확인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을 넘어 민주주의와 인권 및 다자주의를 위한 가치동맹으로 발전”한다는 식의 수사를 통해 소극적으로나마 당해 지역 개념 및 전략 구상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은 쿼드에 참여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미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미국-일본-호주-인도 4각 동맹을 핵심에 두게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코리아 패싱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고려할 때 정말 한국이 패싱되었다고 보긴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한일 간 외교적 갈등이 현재 미국이 전개하고자 하는 연대와 동맹을 통한 대중국 봉쇄전략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미국의 동맹전략이 더욱 강력한 연대압박을 동반하게 될 경우, 한일 양국은 좋든 싫든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할 가능성이 크다. 양국 간 관계 정상화는 최근 대두된 민족주의적 발상을 극복하는 과제뿐만 아니라, 양국이 서로 비슷한 구조적 상황과 위치에 놓여있음을 상호 인지하는 과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한일 양국은 화웨이 사태 국면에서도 비슷한 상황적 조건에 놓여있었지만, 민족주의에 근거한 외교정책과 상호이해 결여로 인해 협력할 기회를 사실상 놓쳤다. 그러나 현재 일본은 쿼드와 파이브 아이즈 동맹의 틀 내에서 미국과의 신뢰 형성을 꾸준히 이뤄왔다는 점에서 한국보다 외교적으로 더 유리한 위치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연대 압박은 일본보다 한국에 더 무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냉혹한 국제정치에서 한국과 같은 비강대국은 강대국의 전략에 연루되거나 방기될 수 있는 위험을 항상 안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봉쇄를 위한 안보전략에 참여하는 것은 연루의 위험을, 참여를 거부하는 것은 방기의 위험을 낳는다. 그럼에도 한국에 대한 미중 양자택일의 압박은 갈수록 더 거세질 수밖에 없기에 외교적 돌파구 마련이 시급하다.

한일 관계 정상화는, 그러한 연루와 방기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 물질적 국력의 측면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비강대국의 외교는 비슷한 구조적 상황과 위치에 놓은 동지국가와의 연대를 통해 강대국 정치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하며, 그러한 맥락에서 한일 관계 정상화는 무엇보다 한국에 이롭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