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서울안보대화에 참석한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 시카고대 교수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깊은 곤경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냉전이 종식된 1989년 시작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그 내재적 결함으로 인해 이미 붕괴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특히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확산정책과 초세계화를 통한 중국 보듬기가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단극체제에서만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는데, 미국의 정책 실패가 단극체제 유지에 해롭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오판이 중국, 러시아 등 다른 강대국의 부상과 도전을 가능케 했고, 그 결과 국제체제가 다극체제로 변화해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과거 2006년 미어샤이머는 한 인터뷰를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단극의 순간은 존재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현실 세계에서 지구적 차원에서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단일 패권국이 등장하기 어려우며, 미국 역시 그러한 능력을 갖추지는 못하였다고 말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현대 국제체제는 미국, 중국 그리고 러시아 등의 강대국들이 경합하는 다극체제라고 주장했다. 냉전 이후 형성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 위에 서 있었다는 그의 최근 주장과, 미국은 애초에 단극체제를 형성하는 단일한 글로벌 초강국이었던 적이 없다는 과거의 주장은 어딘가 잘 들어맞지 않는 구석이 있다.

어찌 됐든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탱하던 단극체제가 미국의 정책 실패로 인해 다극체제로 변화해가고 있다는 미어샤이머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 견해에 근거를 두고 있다. 첫째는 미국이 자유주의에 기초한 대외정책을 통해 글로벌 패권국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 실수 내지는 계산 착오를 범했다는 것이며, 둘째는 애초에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확산정책을 효과적으로 전개할만한 능력을 갖춘 단일 국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의 시각에서 본 미국은 글로벌 패권국이 될 수 있으라는 거대한 환상에 사로잡힌 전략적이지 못한 남북아메리카 지역 패권국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가 그리는 미국의 전략은 무엇일까? 그의 시각은 어떤 이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일까? 미어샤이머는 월츠(Kenneth Waltz)의 구조적 현실주의 이론을 기초로 하여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을 정립한 학자이다. 그러나 공격적 현실주의는 여러 면에서 월츠의 이론과 상충한다. 먼저 전자는 호주가 국가를 지나치게 유순한(benign) 행위자로 봄에 따라 국가들이 부상하는 잠재적 침략국에 대항해 효율적으로 세력균형을 이룬다는 잘못된 명제에 입각해 있다고 비판한다. 세력균형이 국가 간 침략을 효과적으로 좌절시킨다는 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미어샤이머는, 무정부적 국제체제에서 국가는 필연적으로 자조의 압력을 받게 됨에 따라 권력을 지속해서 추구하게 되며, 종국에는 패권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즉, 생존 추구가 권력 극대화로, 권력 극대화가 패권 추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의 끝없는 권력 추구가 세력균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권력 추구는 국가에 이롭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월츠의 견해와 상충하는 논리이다.

또한 미어샤이머는 월츠가 과거 독일제국, 대일본제국, 나치 독일 등 패권을 위해 권력 추구를 멈추지 않았던 강대국들의 행태를 효과적으로 설명하지 못함 역시 지적하며, 그러한 변칙, 즉 구조적 현실주의의 이론적 논리에 맞지 않는 국가 행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외교정책 이론이 필요하다는 월츠의 견해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월츠가 자신의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변칙적 사례들을 ‘국가의 어리석은 행태’로 취급하고, 개별 국가의 행태를 설명하는 것을 거부함과 동시에 결과를 설명하는 데에만 집중한 나머지 이론의 변증과 강대국 행태에 대한 설명을 모두 어렵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그러한 비판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이 정립한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이 월츠의 그것보다, 그리고 방어적 현실주의 이론보다 현실 세계에서 목도되는 국제정치 현상, 특히 강대국의 끝없는 권력의지와 패권 추구를 더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강대국이 필연적으로 자신이 속한 지역의 패권을 추구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다음의 공격적 현실주의의 다섯 가지 가정에 기초한다: (1) 국제체제는 무정부이며; (2) 강대국은 어느 정도 공격을 위한 군사능력을 갖추고 있고; (3) 국가는 다른 국가의 의도를 절대 확신할 수 없으며; (4) 국가는 생존을 추구하고; (5) 강대국은 전략적 계산에 따르는 합리적 행위자이다. 그는 월츠의 이론이 마지막 가정, 즉 강대국은 전략적 계산에 따라 행동하는 합리적 행위자라는 가정을 수용하지 않는 점에서 자신의 이론과 뚜렷한 차이를 가진다고 말한다. 국가는 합리적 행위자이지만 때때로 전략적이지 못한 결정을 내리며, 그러한 계산과 파단의 오류는 다른 국가들의 처벌을 불러일으킨다는 게 그의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에 근거하여 미어샤이머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냉전 종식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에 기초한 잘못된 대외정책을 전개해왔다고 보는 것이다. 잘못된 계산과 판단에서 비롯된 정책을 펼친 결과 중국의 부상이나 중동에서의 고전 등 감당하기 버거운 난제에 봉착하게 되었으니 지금이라도 자유민주주의 확산에 대한 어리석은 열망을 버리고 공격적 현실주의에 근거한 대외정책을 전개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즉, 중국과 러시아 등 미국을 위협할만한 능력을 갖춘 강대국들의 도전을 저지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미어샤이머는 최근 바이든 행정부 하에 미국이 보이는 일련의 대외정책을 어떻게 평가할까? 최근 쿼드, 파이브아이즈, D10 구상, T12 구상, 클린 네트워크 등 동맹을 활용해 군사, 경제, 기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움직임과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의 행보는 또 다른 지역 패권국의 부상과 과도한 분쟁 개입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그의 입장에선 환영할만한 행보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동맹 전략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연대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을 지원하는 자유민주주의 우방국들 역시 자유주의에 근거한 규칙기반 국제질서 보호를 핵심 국익으로 내세우며,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가 그러한 질서를 보호하는 데 강한 의지가 있다는 믿음에서 미국 주도의 연대에 참여를 결정하고 있다. 미중 경쟁이 빠르게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 이념 대립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미어샤이머의 주장대로, 자유주의에 근거한 미국의 대외정책은 전략적 자산과 국제적 영향력 그리고 의지를 사방으로 분산시킨 정책이거나 다른 지역 패권국의 부상을 용인한 실패한 정책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현재 중국의 세력팽창에 대항해 미국의 편에 선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규칙기반 질서’, ‘자유주의 국제질서’, ‘민주주의’ 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마냥 실패한 정책이라고만 볼 수는 없지 않을까?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미어샤이머의 바람대로 자유주의 확산정책을 추진하지 않고 공격적 현실주의에 따라 공세적으로 중국을 포함한 다른 강대국의 부상을 막는 데에만 몰두했다면, 현재 중국 견제에 사용되고 있는 자유주의 기반의 가치들에 대한 지원은 아마 없지 않았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