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경쟁이 갈수록 거세지는 상황에서 최근 인도-태평양 지역 내 대표적인 중견국이라 할 수 있는 한국과 호주는 상당히 대조적인 외교 행태를 보여왔다. 전자의 경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전략을, 후자는 미국의 반중(反中)연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양국이 물질적 국력, 미국과의 군사동맹관계, 중국과의 경제관계 등의 측면에서 유사한 구조적 상황에 놓여있는 유사입장 국가라는 점에서 이들 간 외교행태의 차이는 쉽게 이해되질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구조적 상황 또는 상황적 조건은 엄밀히 말해 전통적인 국제정치 이론의 시각에서 발견되는 조건이다. 현실주의의 시각에서 볼 때, 한국과 호주는 비슷한 국력의 규모나 강대국과의 위계적 동맹관계의 측면에서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자유주의가 말하는 경제적 상호의존을 기준으로 본다면 양국은 중국과의 경제관계에서 매우 유사한 조건에 놓여있다.

물론 한국과 호주가 처해있는 구조적 상황에는 유사점만큼이나 차이점도 존재한다. 한국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에 둘러싸인 동북아에 놓여있지만, 호주는 남태평양 지역을 세력권으로 삼고 역내 도서국들을 상대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자리해있다. 호주는 영연방과 파이브아이즈 정보동맹을 통해 미국 외에도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앵글로색슨 우방국들과 긴밀한 안보 협력관계를 맺고 있지만, 한국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우방국 일본과도 불편한 관계에 있다. 무엇보다 호주는 북한과 같은 실재하는 군사위협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우며 동시에 중국의 정치적 협조를 꼭 필요로 하는 한반도 문제를 안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양국 모두 미중 양자택일의 압박을 받고 있고 또 중견국 외교를 표방하며 믹타(MIKTA) 등을 통해 각기 자리한 지역 또는 글로벌 차원에서 영향력 증대를 모색해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상당히 대조되는 이들 국가의 외교행태는 분명 흥미롭다. 그렇다면 한국과 호주 간 외교행태의 차이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그 차이는 각국의 ‘중견국 외교전략’이 상이한 구조적 위치에 대한 인식과 역할 구상에 기초하기 때문에 비롯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먼저, 한국의 중견국 외교는 그 핵심을 ‘균형’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균형이란 대결구도에서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로, 과거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미국의 전략에 따른 동북아 질서 재편 구상과 그에 따른 일본의 역할 및 영향력 확대, 그리고 이에 대한 중국의 견제적 반응이 복합적으로 만들어내는 지정학적 구조 속에서 한국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는 안보구상이었다. 이는 노무현 前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론을 주창하며 “우리 외교는 동북아 질서를 평화와 번영의 질서로 만들기 위해 역내 갈등과 충돌이 재연되지 않도록 균형자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한 데서 잘 드러난다. 현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한반도 정세에 있어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끌려가거나, 북미 간 협상에서 소외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의 역할을 키움과 동시에 북미 사이에서 이들 간 관계를 중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다. 달리 말해, 넓게는 동북아 지역 구조, 좁게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구조의 질서가 결정되는 데에 중요한 독립변수가 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구상이라 할 수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호주 역시 지역 질서의 안정을 추구하면서 그러한 질서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데 자국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왔다. 호주는 규칙기반 질서(rules-based order)를 핵심 국익으로 설정하고 그에 맞춰 외교전략을 추진해왔고, 그러한 질서 유지와 안정을 동맹 강화와 다자협력 주도의 명분으로 줄곧 사용해왔다. 진보성향의 러드(Rudd) 정권과 길라드(Gillard) 정권하에서도, 보수성향의 애봇(Abbott) 정권과 턴불(Turnbull) 정권하에도 규칙기반 질서 유지는 호주 국방백서와 외교백서에서 외교정책의 핵심축으로 명기되었다. 현재 모리슨(Morrison) 정권 역시 미국과의 관계 강화와 쿼드(QUAD) 복귀 등 연미기중(聯美棄中) 기조에서 비롯된 듯한 일련의 조치가 인도-태평양 규칙기반 질서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만큼 호주는 자국이 중견국으로서 중추적인 위치에서 지역 질서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로버트슨(Jeffrey Robertson)은 중견국 개념이 한국에서는 양극단 간 대결구도의 중간에 놓여 중심을 유지하는 ‘균형자’의 의미로 정의되었고, 그에 따라 중견국 외교를 표방하는 한국의 외교정책 역시 미중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으려는 ‘균형잡기’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제1세대 중견국이라 불리는 캐나다와 호주에서 중견국은 균형자라기보다 주변 안보 환경의 변화에 따라 행동을 달리하는 국가로 정의된다고 말한다. 중견국은 안보위협의 수준이 낮다고 인식할 때는 강대국의 행동을 제한함과 동시에 자주적인 외교전략을 수행하며, 반면에 안보위협의 수준이 높을 땐 강대국의 행동을 지원하며 안보를 위해 강대국과 연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김상배는 중견국 외교를 그 처한 상황에 따라 중개외교와 연대외교를 행사하는 ‘변환적 중개자’의 전략으로 정의한다. 즉 중견국 외교란, 자신을 둘러싸고 존재하는 국제정치의 구조 또는 국가 간 관계망에서 영향력을 증대할 수 있는 구조적 공백(structual holes)을 찾아 이를 장악함으로써 위치권력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개와 연대의 외교를 전개하는 외교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종합해볼 때, 한국과 호주의 상이한 외교행태는 각기 차지하는 구조적 위치와 역할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전자는 미중 패권경쟁의 구조 속에서 자국의 위치가 양극단 사이에 끼어 있다고 보고, 갈등 국면에서는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양극단 간 협조를 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반면에 후자는 규칙기반 질서 유지가 자국의 안보와 번영에 필수적이라 여김에 따라 질서 옹호자(promoter)로서의 위치와 역할을 지향한다. 양국 모두 지역 질서의 안정을 원하며 질서 유지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를 원하지만, 그러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행사하기 위해 전개하는 외교전략이 상이한 구조적 위치와 역할에 대한 구상에 기반을 두고 있어 대조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외교정책을 구상함에 있어 한국이 호주보다 상대적으로 더 소극적인 위치와 역할을 그려왔다고도 볼 수 있다.

호주의 중견국 외교가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역할론에 입각해 있다고 하여 한국의 그것보다 옳은 전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호주의 중견국 외교전략은 현상유지를 위해 패권국의 편에서 부상하는 도전국에 대항하는 것이기에 전략적 연루와 방기의 위험을 상대적으로 더 감수해야 하는 전략이다. 호주에서도 자국이 아시아 세기에 미국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중국을 밀어내는 선택을 하게 될 시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음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정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줄곧 있었다. 그러한 담론을 주도했던 대표적인 인물인 호주의 전략학자 화이트(Hugh White)는 호주가 과거 유럽협조체제(Concert of Europe)와 같은 형태의 권력공유(power sharing)가 아시아 지역에서 미중 간에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호주가 중개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왔다.

그러나, 최근 화이트는 자신이 이야기하는 아시아협조체제 구상이 미중 패권경쟁의 갈등 수위가 급격히 높아짐에 따라 대략 2012년을 기점으로 더는 실현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다시 말해, 호주가 미중 간 평화로운 권력공유를 유도하는 균형자 또는 중개자 역할을 수행하기엔 때가 너무 늦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호주가 미중 어느 쪽도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으므로 자체적인 국방력 강화와 동남아 지역 내 유사입장 국가들과의 안보협력 강화를 통해 미중 패권경쟁의 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호주가 취하는 연미기중 기조의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견국 외교의 관점에서 현재 호주가 보이는 전략이 한국에 주는 함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할수록 그 중간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대칭적이고 거래적인 전략을 추구하는 한국의 위치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양자택일의 순간을 가능한 한 회피하며 균형과 헤징의 가능성을 높이려는 전략은 미중 갈등이 관리되는 수준일 때 효과적일 수 있다. 양자택일의 순간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다다라 어쩔 수 없이 정책의 방향을 틀어 어느 한쪽을 선택하게 된다면 한국은 지금보다 더 어려운 위치에서 더 작고 소극적인 역할에 갇히게 될 가능성이 크다. 중견국의 외교전략이 어떤 구조적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지향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때, 그러한 구조적 위치와 역할을 모색하는 일 역시 패권경쟁의 압박이 높아질수록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최근 미중이 군사, 경제, 기술 등 전 분야에 걸쳐 갈등의 수위를 높여가는 암울한 현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의 중견국 외교가 추구해야 할 구조적 위치와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조차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