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주, 뉴질랜드의 사이버 안보전략과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정보동맹에 관한 리서치를 진행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데즈먼드 볼(Desmond Ball) 교수님의 저서와 논문을 다시금 접하게 되었다. 학부시절 호주 국방과 아태지역 안보문제에 관한 볼 교수님의 글을 많이 읽기도 하였고, 헤들리 불 빌딩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책을 몇 권 얻었던 기억 역시 있다. 당시 그는 명예교수였기에 학부생들과의 교류가 없었지만, 무턱대고 찾아와 동남아 지역 비전통안보에 관심이 있다며 책을 동냥하는 학부생을 상냥하게 맞아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졸업과 동시에 한국에 돌아왔고, 이듬해인 2016년 그가 암으로 생을 마감하였다는 소식을 접했다.

볼 교수님은 ‘저항적 지성(Insurgent Intellectual)’이라 불렸다. 그는 1965년 17세의 나이로 호주국립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였고, 학부시절에는 경제학과가 가장 뛰어난 1학년 학부생에게 수여하는 쉘컴퍼니상(The Shell Company Prize)을 받을 만큼 학업성취도가 높았다고 한다. ‘탄도탄 요격유도탄과 국제적 안정’이라는 제목의 학부졸업논문으로 대학이 학부생에게 수여하는 상 중 가장 귄위있다고 알려진 틸리어드상(The Tillyard Prize)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말 잘 듣는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학부시절 교내에서 베트남전과 징병에 극렬히 반대하는 학생으로 유명했고 또 반전 성향을 보이는 교수들과 잘 어울린 탓에 일찍이 호주안보정보국(ASIO)의 관찰 대상이 되었다.

학부 졸업 후 같은 대학의 아시아태평양대학 국제관계학과 대학원에 입학하여 영국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불리는 헤들리 불(Hedley Bull) 교수님의 지도 아래 1972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학위논문은 ‘케네디 행정부의 전략미사일 프로그램: 1961-1963’을 주제로 삼았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바로 시드니대학교에서 강사로 짧은 시간 일했고, 1974년 호주국립대학교 전략방위연구센터(Strategic and Defence Studies Centre)의 조교수(Lecturer)가 되었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센터장을 역임하였고, 1987년에는 전략방위연구센터가 그를 위해 만든 특임교수직(Special Professor)에 올랐다. 말년에는 연구와 교육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호주국립대가 가장 명망있는 교원에게 수여하는 피터보메상(The Peter Baume Award)을 받았다. 그리고 2016년 10월 12일 암 투병 끝에 6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전략방위연구센터에서 명예교수로 연구를 수행했다.

볼 교수님은 냉전 시기 미국 정부의 핵전략 자문으로 초청되어 ‘미국-소련 간의 제한적 핵공격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며, 이는 결국 핵무기가 총동원된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결과를 제시함으로써 소련에 대한 미국의 선제적 핵무기 사용을 막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 일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세계를 구한 남자(a man who saved the world)’라는 극찬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생전 그는 미국·호주의 공동감시시설과 파이브 아이즈 정보동맹체계, 1999년 동티모르 내 인도네시아 군부의 폭력과 학살, 그리고 말년에는 미얀마 군정이 북한의 도움으로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해 온 사실 등을 폭로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함으로써 국내·국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반면에, 민감한 주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다는 이유로 호주 정보기관의 곱지 않은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외에도 볼 교수님은 핵전략, 호주 국방, 무력 분쟁, 사이버 전쟁, 아태지역 안보구조 등 다양한 문제를 주제로 방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지금도 헤들리 불 빌딩에 자리한 전략방위연구센터의 보잉 도서관(Boeing Library)에는 그가 쓴 수많은 책과 논문이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