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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SNS, 인터넷 뉴스를 보면 온통 남북정상회담과 관련된 이야기뿐이다. 하기야 당장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 같던 분위기 속에서 도출된 화해였으니 국민적 기대가 하늘을 찌르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언론이 핵전쟁 발발 가능성을 논하던 것이 불과 몇 달 전 일이니 남북평화선언을 반가워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세상에 드러난 북한의 지도자는 상당히 젠틀하고 위트있는 모습이었다. 독재자와는 거리가 먼 그 모습에 한국은 물론이고 서구권 많은 사람들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 그 모습은 철저히 위장되고 거짓된 것일 수 있지만, 마키아벨리의 말처럼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 된 내면이 아닌 겉모습만을 기억할 뿐이니 이번 정상회담은 여러모로 북에게 이로웠다고 평가해볼 수 있다. 우리 국익에도 이로웠길 간절히,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번 회담을 지켜보며 북한의 의도나 한반도 비핵화 가능성 등과 같은 국제정치적 현안보다 좀 더 원론적인 질문에 매달리게 되었다. 오늘날 인간 사회는 평화라는 사회적 가치를 충분히 인지하고 그것을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왜 전쟁의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국가는 갈수록 더 진보해 가는데 왜 전쟁이라는 원시적 행태를 버리지 못하는지, 문명화된 인간 집단이라면 폭력을 동반한 전쟁이 아닌 평화적 방법을 통해 갈등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전쟁을 통해 평화를 얻고자 하는지 스스로 물었다.

물론 학부시절 개론 수업에서 처음 현실주의를 공부하며 이에 대한 그럴싸한 답을 얻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가가 가지는 본질적 두려움에 대한 설명일 뿐 미개한 수준을 탈피한 문명사회가 왜 여전히 전쟁을 수행하고 또 경험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진 못했다.

그래서 집어든 책이 브렛 보든의 『문명과 전쟁』(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7) 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룬 책이지만 페이지가 그리 많지 않아 읽은 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 전쟁과 문명에 대한 고찰을 담은 책은 많지만 이 책이 좀 더 특별한 이유는 문명과 전쟁을 결코 상반되는 개념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저자는 문명과 전쟁이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함께 태어나 동반성장의 길을 걸어왔다 주장한다. 따라서 인류가 더 문명화되면 될수록 전쟁에서 멀어질 것이란 믿음 역시 부정한다.

역사적으로 문명은 항상 전쟁을 동반해왔고 전쟁은 문명을 정당화 하는 데에 사용되어 왔다. 이 책에서는 그 이유를 문명의 윤리성 및 도덕성 결여에서 찾는다. 문명은 분명 진보의 산물이지만 그 진보가 오직 정치적, 사회적, 물질적 차원에만 집중된 것이라면, 그래서 도덕성과 윤리성을 상실한 상태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원시적 폭력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최근 미국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공식 수도로 천명하면서 유혈사태가 발생해 사상자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모두 부강한 국가이며 그들의 종교와 사상은 과거부터 ‘문명화 작업’의 명분이자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미국과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자행하고 있는 폭력은 문명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 역시 도덕을 상실한, 다시 말해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는 껍데기 문명은 폭력의 또 다른 얼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저자는 문명과 전쟁의 관계에서 두 개의 자기 파괴적 측면을 볼 수 있다 말한다. 즉, 전쟁의 수행을 통해 문명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성취된 문명이 조직적, 기술적 진보를 낳아 더 효과적인 전쟁 수행을 촉진함으로써 결국에는 문명을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자기 파괴적 악순환은 문명화 과정이 도덕적 진보를 포함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슬프게도 당분간 아니 어쩌면 앞으로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인류는 문명의 성취와 상관없이 갈등과 충돌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능력을 갖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인류가 이타성을 잃어버린 채 물질적 성장에만 집착한다면 전쟁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 곁에 존속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문명과 전쟁의 관계를 주제로 다뤘지만 인류의 진보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예전에 읽은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 교수의 책 『성장숭배』(원서: Growth Fetish) 처럼 인류의 진보가 과연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2018. 5.
신승휴